brunch

다시, 행복한가라는 질문

by 작가서당


우리는 인사할 때 자주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나눈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인사말이지만 어느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정말 건강한가?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그리고 이 행복은 단순한 바람을 넘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진 권리이기도 하다.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사람이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명확히 적혀 있다. 이처럼 행복은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이자 목표다.

하지만 행복의 의미는 시대와 문화, 그리고 사상에 따라 다양하게 다르게 정의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단순한 기분이나 쾌락이 아닌, 삶의 가장 높은 목표로 보았다. 그는 행복을 ‘덕’과 ‘이성’으로 완성되는 품격 있는 삶이라 했고, 우리 각자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펼치면서 공동체 안에서 좋은 일을 실천하는 그런 삶이라고 이해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의미 있고 뿌듯한 삶을 원한다. 저녁 늦게 조용히 앉아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며드는 차분한 기쁨, 그런 순간 말이다. 반면, 법륜 스님은 행복을 괴로움이 없는 상태, 즉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정의한다. 아픔과 괴로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즐거움, 즉 쾌락과는 다른 개념이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는 즐거움이 없더라도 행복이 될 수 있다. 인도 명상가 라즈니쉬는 “행복은 몰입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일에 온전히 마음을 다하고 몰입할 때 행복은 자연스레 다가온다는 뜻이다. 아침 햇살 속에서 엽서를 쓰듯 눈앞의 일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최근에는 ‘소확행’과 ‘아보하’라는 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이다. 퇴근길 편의점 맥주 한 캔, 늦은 오후 햇살, 곁에 놓인 작은 식물 하나. 이런 작은 기쁨과 만족이 우리 삶의 행복 공식처럼 여겨진다. 소확행은 우리의 일상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소중한 행복이다.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삶의 더 깊은 의미와 소명, 자기실현이라는 더 큰 행복도 추구한다. 이 두 행복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층위에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작은 행복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하고, 항상 더 큰 행복,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행복을 마음 한편에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은 기쁨 속에 담긴 더 큰 뜻을 발견하는 일, 바로 그 ‘큰 생각’과 연결하는 힘이 필요하다. 작은 행복을 큰 생각과 연결할 때 그것은 비로소 완전한 행복이 된다. 그 큰 생각은 자기실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신앙의 의미나 자신의 소명일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소망과 소명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과 맞닿을 때 소확행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삶의 깊은 의미로 확장된다. 작고 보통의 하루가 자신만의 더 큰 이야기에 닿아 있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위안을 얻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작은 기쁨을 큰 의미와 연결할 수 있을까? 우선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과 선함을 포착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왜 이 일을 좋아하는지, 왜 반복하는지를 돌아보고, 그것이 나만의 재능이나 소명을 드러내는 통로임을 자각하는 것. 이렇게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행복은 단순한 좋은 기분을 넘어 ‘이래도 좋다’는 삶의 수긍으로 깊어진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 다만 그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매일 돌아보며 깨닫는 것은 평범함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하루가 사실은 기적이라는 점이다. 익숙하고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우리는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한 끼 식사,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하루,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평범한 아침. 이 아주 보통의 하루의 모든 것이 작은 기적이다.


예수가 말한 팔복(八福)은 세상의 어떤 행복론보다도 날카롭고 역설적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해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복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은총 안에서 보면 진정한 행복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보는 눈, 작은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마음에서 온다. 이 팔복은 단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되는 은혜다. 우리가 애쓰는 일상, 때로 지루하고 고단한 하루에도 팔복의 은혜는 깃들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고 방향을 찾으며 다시 웃는다.


나는 다시 내게 묻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가 사는 이 일상에서 나는 어떤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찾는 행복은 무엇인가? 그 행복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품격 있는 삶, 소확행의 작은 기쁨, 아보하의 평범한 하루, 그리고 팔복의 신비. 모두가 행복을 말하지만 각기 다른 길이다. 결국 행복은 나와 나를 둘러싼 일상, 그리고 나의 깊은 생각과 연결될 때 완성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행복한가 라는 질문"으로 <삶철학: 길 위의 질문들>을 일단 멈춥니다. 그동안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셔서 글 쓰는데 많은 힘과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2화나대로 꽃 피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