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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15년

by 뽕호

입사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한 중소기업 디자인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를 했다. 2년제 대학은 취업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인턴십프로그램에 따른 학점으로 인정해 주었다. 군 입대를 전후로 일이라고는 거진 아르바이트만 해봤었기에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한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부터 잘 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6개월 동안 인턴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가 디자인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간 배운 디자인에 관한 경험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입사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동안 나는 팀과 팀원으로서 적응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즈음 대표님께서 나의 다른 재능을 알아봐 주셨다. 그 재능이란, 여러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능력과 상황에 따라 다른 디자이너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는 개발팀으로 부서를 옮긴다.




적응

첫 회사의 첫 팀에서의 실패를 발판 삼아 두 번째 팀에서는 꼭 이 팀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었다. 매일 배우고 공부하고 인정되지도 않는 야근까지 했다. 창의적인 영역의 디자인과는 다르게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 특히 영상 프로그램은 노력하면 할수록 실력이 급격히 늘어갔다. 첫 팀에서 그렇게 노력해도 안 생기던 재미라는게 생겼다. 점점 나를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졌고, 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내 시간도 아끼지 않았다.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다들 기뻐해주는 일도 생겼다. 특히 고객이 만족해할 때 가장 뿌듯했다. 이 모든 것이 대표님께서 믿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주임이 되고 대리가 되었다.




관계

연차와 직급이 쌓이는 동안 중소기업 치고는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거쳐갔다. 회사라는 조직은 업무나 고객과의 스트레스보다 사내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트러블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중에 대부분은 대표님과의 문제였을 것이다. 몇몇 직원들은 틈만 나면 대표님이나 윗사람들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어느 회사나 상사 뒷담화의 문화가 있다지만 나는 도저히 뒷담화 만큼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조금씩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역시 그 무리에서 소외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애써 그런 사소한 문제에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안 좋은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고 과장급, 팀장급 사람들이 하나, 둘 퇴사를 하더니 뒷담화를 주도하던 사람부터 말단 직원까지 몇 달 사이에 한꺼번에 퇴사를 하는 바람에 회사는 한번 위기를 겪는다. 그 몇 달 동안이 아마도 내 회사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사내 동료들과 쉽게 친해지지 말아야겠다는 벽이 생겼다.




위기

과장이 되면서 나는 내가 강해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당연히 착각이었다. 위에서는 쪼고 아래에서는 개기는 중간자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자꾸만 내 사수인 이사님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몇 년간 함께했던 이사님과 의견충돌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사님도 꽤나 확고한 스타일이셨는데 나 역시 한 가지에 꽂히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얼마 후 이사님께서 퇴사를 하셨다. 아마도 이사님 본인의 생각과 대표님이 가고자 하는 길이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사님께서 맡고 계시던 중요한 분야의 매출이 줄어들면서 회사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탄핵이라는 대한민국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매출의 90%를 관공서에 의지했던 우리 회사는 매출이 반토막 나며 인력을 절반으로 줄인다. 그 과정에서 한 차례 실직 위기를 겪은 나는 영업팀 이사님의 도움으로 팀을 영업팀으로 옮기며 영업팀 이사님을 사수로 모시게 된다.




기회

영업이라는 업무가 내 성격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사수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고 있을 무렵 사내 업무 시스템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위기에서 살아남은 베스트 멤버로 구성된 팀원들의 프로젝트 수행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무엇보다 몇 년간 골머리를 앓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에 착하고 일 잘하고 좋은 사람들만 남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영업을 함에 있어서 믿음직한 사람들은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무서울 게 없었고 그걸 기회삼아 고정 고객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다. 나를 믿어주는 사수와 팀원들 덕분에 나는 입사 14년 만에 부장의 직급을 달게 된다.




퇴사

두 번째 탄핵. 핑계를 대고 싶진 않지만 계엄 이후로 매출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나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떨어지는 숫자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여러 번 직감했었던 권고사직이라는 단어가 대표님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수긍해야만 했다. 사수는 내 퇴사를 막기 위해 며칠 동안 노력해 주었다. 그에 반해 나는 너무나 빠르게 예스맨이 되었다. 다른 길은 없어 보였다. 순간 15년 동안 달려온 내 과거가 보였다. 매일 아침 전투적으로 출근하던 나. 고객들과 사투를 벌이던 나. 동료들과 웃고 울던 순간들의 나. 짧고도 길었던 회사라는 긴 여정의 여행의 쉼표를 찍었다. 더 긴 여행을 위한 짧은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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