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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샘 지연 Oct 22. 2024

<행복한 청소부>

천국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

  아빠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술 냄새나 담배 냄새라면 뭔지 알 수 있으니까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우리 아빠는 죽은 사람들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이다. 유품관리사라고도 하고 특수청소부라고도 한다. 

  아빠는 분명히 나한테 소방관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쟁이다. 거짓말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거라고 했으면서 딸한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아빠가 소방관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를 채기는 했었다. 

  그 사실을 같은 반 아이한테 확인을 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근린공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나는 하교 후에 꼭 놀이터에서 그네를 탄다. 힘차게 발을 굴러서 하늘을 향해 양발을 쭉 뻗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윤슬, 강윤슬.”

  그네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두 발을 모래바닥에 내려놓으며 그네를 멈추고 돌아봤다. 우리 반 배서현이 서 있었다. 

  “웬일이야? 너 여기 안 살잖아.”

  “가까운데 뭐. 오늘은 학원 안 가는 날이라 놀다가 가려구.”

  서현이는 그렇게 말하고 옆 그네에 앉았다. 

  이 아이는 우리 동네를 조금 지나 오르막길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혼자 우뚝 서 있어서 나홀로 아파트라고 한다고 엄마가 그랬다. 빌라 3층 우리집에서 놀이터 건너편으로 보이는 그 아파트를 볼 때마다 부러웠다. 우리집 같은 빌라를 모아서 재건축했다고 들었다. 우리집도 얼른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학교 밖에서 서현이와 둘이 나란히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 1학기 여자회장 선거에서 내가 회장이 되고, 서현이가 부회장이 되었지만 우리는 친하지 않아서 말도 거의 안 하는 사이다. 


  “저기……. 너네 아빠 청소부라며?”

  서현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뭔 소리야? 우리 아빠 소방관이거든.”

  당황스러웠다. 우리 아빠는 나한테 아직 소방관이니까 말이다. 내가 표를 자기보다 더 받아 여자회장이 돼서 시비를 거는 거라 생각했다.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니?”

  서현이가 그네 옆자리에 앉아서 다시 물었고, 나는 그네를 멈추고 서현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만해! 왜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말을 하는 건데?” 

  “죽은 사람 집 청소한다던데……. 우리 아빠가 만났대, 너네 아빠.”

  “내가 아빠에 대해서 왜 모르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에나 가시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나는 그네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집이 놀이터에서 가까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바로 앞 우리집으로 내달렸다. 

  ‘우리 아빠를 어떻게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남의 동네에 와서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배서현이 정말 미웠다. 다시 가서 뺨이라도 세게 때려주고 올까? 내가 덩치는 더 크니까 싸우면 당연히 이길 것이다.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대면서 계단을 부서질 듯 밟고 올랐더니 구멍 난 공처럼 기운이 쏙 빠져서 더 올라갈 힘이 없었다. 3층 계단참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뜨거운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어서 내 얼굴을,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기억이 나버렸다. 1학기 학부모총회 때 아빠가 학교에 온 적이 있었다.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에 온다고 아빠를 구박했었다. 그때 다른 집 아빠가 한 명 더 왔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배서현 아빠였다. 두 아빠는 엄마들 틈에서 어색했는지 같이 나란히 서서 우리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온 게 좋아서 계속해서 교실 뒤쪽을 돌아봤다. 선생님이 여자 회장, 부회장 아빠 두 명이 같이 있으니까 서로 아는 사이냐며 물어봤던 장면도 선명히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그날 딱 한 번 본 거잖아. 걔네 아빠는 우리 아빠를 어디서 봤다는 거야?      

  “엄마, 엄마 어딨어?”

  나는 현관문을 급하게 열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윤슬아, 왜? 놀이터에 있길래 한참 있다가 들어오나 했지. 일찍 들어왔네.”

  “엄마, 아빠는 무슨 일 해? 소방관 아니지? 배서현이 이상한 소리를 하잖아.”

  엄마는 갑자기 얼음이 된 듯 멈춰 섰다. 

  “그게 말이지…… 아빠가 윤슬이를 속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지 못한 거야.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잖아도 아빠가 며칠 전부터 말하려고 했대. 서현이 아빠를 만났다더라. 그래서도 이제는 윤슬이한테도 말을 해야지 하면서... 말하려고 했거든.”

  엄마가 다가와서 나를 안으려고 했지만 나는 엄마를 뿌리쳤다.

  “아빠는 나한테 거짓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했잖아. 엄마도 그랬잖아. 어떻게 딸한테 엄마 아빠가 같이 이럴 수가 있어?”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쾅 닫았다. 한동안 울었고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빠와 나는 자기 전에 좋아하는 책을 서로 읽어주고 있었다. 아빠가 골라온 책은 『내가 하는 일 가슴 설레는 일』이다. 디즈니랜드 야간 청소부들의 이야기. 나는 책이 너무 두꺼우니까 싫다고 했지만 아빠는 첫 번째 것만은 꼭 들어달라고 했다. 청소부 아빠는 디즈니랜드 청소부인 것을 숨기고 관리자라고 딸을 속이는데, 딸은 그걸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면서 고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며칠 전부터 이 이야기를 자꾸 읽어준다고 해서 아빠가 왜 그렇게까지 이 책을 고집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서 잘 떠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대충 잠이 들어서 옷이 엉망이었다. 방에서 몰래 나와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누군가가 욕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엄마가 아침을 먹으라고 했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계속 말을 걸었지만 방바닥만 쳐다보다가 학교로 향했다. 1층에서 그리고 학교 가는 내내 어떤 시선이 계속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봐 싫었다. 두려웠다. 


  교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배서현 자리가 멀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오늘만큼은 걔랑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서 책상에 올려놓고, 가방을 책상에 걸고 주변 정리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목이 탔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서 물을 마시다가 책상에 물이 쏟아졌다. 꽤 많이. 티슈를 꺼내려고 책상 서랍 준비물 바구니를 뒤지는데, 웬 편지봉투가 있었다. 티슈로 대충 책상을 닦고 편지봉투를 열어봤다. 예쁜 글씨체였다. 



윤슬아, 안녕!

나 서현이야. 


어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너를 놀리거나 기분 나쁘게 하려고 너한테 간 게 아니야. 너랑 나랑 공통점이 있는 게 좋아서 일부러 놀이터로 간 거야. 

우리 아빠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러 갔는데, 너네 아빠를 만났대. 그 집이 어떤 여자가 혼자 살았는데, 자살을 했대... 아빠는 그런 집은 처음 봤대. 냄새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나와서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너네 아빠가 오게 된 거야.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있던 곳은 오래 방치돼서 냄새도 많이 나고 세균도 엄청 많다고. 아무나 청소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더라고.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했던 거지. 너희 아빠 같은 사람 말이야. 우리 아빠는 집을 고칠 때도 제일 중요한 건 청소라고 했어. 

너랑 나랑 아빠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서 참 좋았어. 1학기 때 임원도 같이 했는데, 친하게 지내지 못해서 속상했거든. 이번에 너랑 얘기도 하고 친해져야지 했던 거야. 

사실 나는 우리 아빠가 늘 먼지가 폴폴 나는 작업복만 입고 다니는 게 참 싫었어. 지금도 좋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너랑 이야기하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 

 

내가 기분 나쁘게 했으면 용서해줘. 

우리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  서현이가


 


  나보다 키는 작지만 마음은 언니 같은 아이였다, 서현이는. 왜 이제야 알게 된 거지? 교실에서는 얌전히 앉아만 있어서 어떤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학교 끝나고 우리 집 앞 놀이터에 같이 가자고 말해야겠다. 오늘은 그네를 타고 정말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윤슬아, 오늘밤은 이 책 어때?”

  “으윽, 또야?”

  아빠가 『행복한 청소부』 동화책을 가지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 책은 그림책이지만 글밥이 많아서 나는 별로다. 모르는 사람들 이름도 너무 많다. 하지만 아빠한테 싫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이제는 아빠가 자기 전에 이 책을 가지고 내 방에 오는 이유를 확실히 알아버렸다. 아빠가 울지도 모르니까 모른 척할 준비도 해야 한다. 오늘도 분명 아빠가 일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게 틀림없다. 

  ‘아빠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하나? 아, 졸린데……’

  잘 준비를 다하고 누웠다가 나는 일어나서 침대 머리에 기대 앉았다. 

  “아빠, 또 안아줘?”

  “응…… 역시 아빠한텐 윤슬이밖에 없다.”

  침대에 반쯤 앉아서 아빠는 나를 꼭 껴안았다. 아빠의 심장소리가 콩콩콩 아기 고릴라가 가슴을 치는 듯 내 가슴까지 전해졌다.

  “이래서 나한테 거짓말했던 거야? 아빠처럼 힘들까봐?”

  “응? 아……. 그랬나부다. 아빠가 너무 힘든데, 윤슬이는 모르게 하고 싶어서……. 말 못 해서 미안해. 서현이한테서 듣게 해서도 미안하구. 아빠가 많이 부족하다, 그치?”

  “아빤 바보야.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도 됐잖아. 내가 그런 것도 이해 못할 줄 알았어?”

  아빠는 내가 아빠 직업을 알게 된 뒤로 나한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한 건 잘못했다. 아빠가 무슨 일을 하든 나한테 미안할 건 없지 않나? 도둑질만 빼고 말이다. 우리 아빠는 왜 그렇게 눈물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빠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빠가 자기 전에 읽어주는 책을 보면 그날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이제는 제법 눈치가 빠른 10대라는 말이다. 『위대한 청소부』 동화책을 가지고 오는 날에는 아빠가 기분이 좋은 날이다.


  “아빠는 왜 죽어가는 사람들 집에만 가서 청소해? 무섭지 않아?”

  “첨에는 엄청 무서웠지. 아빠가 겁 많은 거 너도 알지, 윤슬아?”

  “그럼, 알지. 아빠는 귀신의 집에 가서도 맨날 내 뒤에 숨잖아. 아빠를 지켜주느라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럼그럼, 아빠는 우리 윤슬이 없으면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하지.”

  “근데, 왜 아빠랑 어울리지도 않는 직업을 골랐어?”

  “아니야. 안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천국으로 이사를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일이 좋아. 힘들 때도 많은데 말이야, 그래도 아빠 같은 사람이 있어야 외롭게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이 저어기 하늘나라로 갈 때 외롭게 울면서 가지 않을 수 있잖아.” 

  아빠 눈에는 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빠가 눈물이 많은 것도 나는 이제 싫지 않다. 우리 아빠는 마음이 정말 따뜻한 사람이니까. 마트에 다녀올 때도 거리에서 힘들게 걷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부축해 드리느라 집에 돌아오는 데도 한참 걸리게 하는 느림보 아빠다. 


  “아빠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청소부가 꿈이었어?”

  “글쎄……, 아빠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

  “에이, 그게 뭐야. 글도 잘 못 쓰잖아.”

  “맞아. 잘 못 쓰지. 그저 매일 일하고 와서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기록을 남기고 있어.” 

  아빠는 죽은 사람들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늦어도 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에 올린다. 스마트폰으로 매일 뭘 하나 궁금했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그렇게 졸라도 안 사주더니, 아빠는 맨날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서 억울했다. 아빠가 그 안에서 매일 뭔가를 적고 있었나 보다.

  엄마한테 부탁해서 아빠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만 일기를 쓰는데, 아빠는 나보다 일기를 더 많이 쓰고 있었다. 함께 글을 써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아빠는 작가라는 꿈을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서현이한테 가서 실컷 자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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