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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Nov 12. 2020

이럴거면 카페에 가시던가(요)

슈퍼을 열아홉 알바생의 버거왕에서 살아남기 - 먹고 살기 힘들다 ep.3


< 먹고 살기 힘들다 >

부제 : 슈퍼을 열아홉 알바생의 버거왕에서 살아남기


ep.3 - 이럴거면 카페에 가시던가(요)


 줄거리 : 유럽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후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계획이 망가지는 걸 지켜보던 열아홉 백수는 이 시국이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자본주의 사회에 발맞춰 금전적 대비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친구의 꼬드김에 갑작스레 입사한 버거왕. 아무것도 모른 채 주휴수당만 바라보고 일을 시작했던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지하철 1호선 뺨치는 무법지대라는 것을….






 내가 매일 농담처럼(보이지만 사실은 백프로 진담인) 뱉는 말이 있다.


 "콜라보다 커피를 더 뽑는(내리는) 것 같은데요."


 그 정도로 우리 매장에는 매일 커피 주문이 쏟아진다. 한 번 커피를 내릴 때 30초가 걸리는 답답한 커피 기계가 딱 한 대 밖에 없기 때문에, 많게는 스무 개 가까이 커피 주문이 밀리기도 한다. 게다가 핫초코와 아이스초코 주문까지 겹치는 상황이 되면 정말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예전에 우리 매장을 도와주러 오셨던 다른 매장 매니저님은 이런 얘기도 하셨다. "여기서 일하면 커피 기계 버튼 누르다가 엄지 손가락 지문 닳아 없어지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카운터 크루들을 괴롭히는 애증의 커피 주문이 더 기묘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사실 따로 있다. 정말 황당하게도, 커피를 주문하는 고객들이 다른 고객들에 비해 유난히 각양각색의 (어이없는) 요구사항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안 보면 섭섭할 정도로 매일 당연하게 마주하는 진상 커피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함께 들여다보자.






1. "나눠 마시게 컵 좀 주세요." + "물 좀 줘요."

- 버거왕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는 1잔에 천 원으로, 다른 커피 전문점에 비해 무척 저렴하다. 가격에 비해 맛도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성비 좋은 아메리카노를 딱 한 잔만 시키는 경우가 있다. 물론 한 명이 아니라 세네 명이서 딱 한 잔. 사실 알바생 입장에서는 커피를 네 잔 내리는 것보다 한 잔 내리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오케이. 진짜 문제는, 이 손님들이 커피잔을 달라고 보채거나 나눠먹게 물을 달라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바쁜 피크 시간에는 자동세척기를 돌릴 시간이 없어 새 머그컵이 부족할 때가 많은데, 다짜고짜 와서 컵을 달라며 당당하게 소리치는 그들의 모습이란…. 그리고 이런 고객들은 거의 99% 물도 달라고 한다. 물은 매장에서 판매하는 품목에 들어가므로 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전무하기에 상황을 설명하면 무슨 물을 파냐며 화를 낸다. 결국 커피 기계에 있는 물(식수로 쓰이는 물이 아님)이 고객들의 신경질을 가라앉히는 응급처치로 사용된다. 정신없이 바쁜 피크 시간대에 이런 손님들이 오면 진짜… 헛웃음만 나올 뿐.


2. "연하게 주세요." or "진하게 주세요."

- 당연한 얘기지만, 매장에서 사용하는 커피 기계는 말 그대로 '기계'다. 버튼을 누르면 채워놓은 원두가 자동으로 갈리며 조리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커피의 묽기 조절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농도 형태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있다. 커피가 써서 어쩌고 저쩌고 연하게 어쩌고 저쩌고. 너무 연해서 어쩌고 저쩌고 진하게 어쩌고 저쩌고. 전문 바리스타에 빙의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고객들 덕분에 가끔은 귀에서 피가 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뭐, 앞에서 언급한 기계의 물을 이용하면 가능하기에 백 번 양보해서 연하게 해달라는 건 그렇다 치지만, 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다. 우리 매장에 와서 늘 커피 한 잔을 시키는 단골 한 분은 이 얘기를 벌써 수십 번이나 했음에도 커피를 두 번 내리면 되지 않냐며 조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다. 그러다 커피가 나오면 가져가지 않고 바로 한 모금을 마신 뒤 맛 평가에 돌입한다. 여기는 커피 원두가 어쩌고 저쩌고 향이 어쩌고 저쩌고 너무 연해서 어쩌고 저쩌고 맛이 없네 어쩌고 저쩌고. 그 말을 듣는 동안 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말 한 마디. 그럴거면 카페에 가시라고요.


3. "몇 개."

- 버거왕에서는 무척이나 많은 종류의 제품을 판매한다. 그렇기에 메뉴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 이상 고객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커피 고객들 10명 중 3명 정도는 뭘 시키려는 건지 얘기를 안 한다. 그냥 카드나 현금을 카운터 테이블 위에  던진 , "2(개수)." 하고 말할 . 도대체 주문하고 싶은 제품이 뭔지 알 수가 없어 "어떤 거 시키시는 거예요?" 하고 물으면 맥락없이 신경질적으로 돌아오는 대답. "말해줘야 알아? 커피 주라고." 당연히 말해줘야 알지 세상에 이런 헛소리가. 그리고 이런 고객들은 99.9999%로 반말을 구사한다. 덕분에 오늘도 수명이 단축되었습니다.


4. 컵 스틸러

- 매장에서 음료 취식을 하게 되는 경우, 음료는 머그컵과 플라스틱컵에 제공된다. 그런데 이 컵들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뜨거운 커피용 머그잔. 이유가 뭘까? 컵을 가져가는 고객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다. 천 원 짜리 커피와 머그컵을 맞바꾸는 균형 없는 거래라니, 그야말로 가성비 갑!






 그야말로 아름다운 진상 고객들의 향연. 믿기 어려우시다고요? 그렇다면 크루로 입사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믿기 싫어도 믿게 될지어니….


 #커피가격인상기원






<먹고 살기 힘들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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