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즈 Mar 05. 2022

나의 노래는 사랑; 첫 대선 투표를 마치고

2022년 3월 4일


    추운 겨울날, 덜덜 떨며 국회 앞에 앉아 18 참정권 운동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리고 아는 것도 없는 애들이 나서서 물을 흐린다느니, 하는 온갖 말들을 들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결국 법이 개정되어 지난 2020 총선에서는  18세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안타깝게도 생일이 보름 늦은 나는 투표에 참여할  없었지만, 집앞에 걸린 ‘18 참정권현수막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화한다. 예전에는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던 가치들에 대한 인정이 늘어나는 한편, 이제까지의 진보가 무색하리만치 퇴보하고 회피하는 자들이 여전히 힘을 갈망하고 혐오와 조롱을 만천하에 퍼뜨린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부끄러워 하지도, 그 행위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약자들 사이의 전쟁을 일으킨 후 전선 뒤로 살금살금 빠져나가 배나 열심히 불리운다.


 그래서 더더욱 처참한 심정으로 지켜본 대선 과정이었다. 특히 20대 여성으로서, 마치 목소리를 제거 당한 기분이 들어 암담했다. 사람이 죽고 아이들이 울고 가난한 자들이 절규해도 강자들에게는 모든 게 음소거 된 ‘주접’이나 다름없다. 한국 사회를 휘감은 망령 같은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몸집만 더더욱 비대하게 부풀리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선거가 내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이 주어진 대선이라니. 사전투표소에 도착해 산더미 같이 쌓인 비닐장갑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화합과 미래는 얼마나 편협하냐고 혼잣말을 했다. 용지에 도장을 찍고 나와 공허한 얼굴로 길을 걸었다. 바야흐로 ‘성대결절성 인간들’의 시대가 왔구나, 하면서.


 그럼에도 “어차피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그냥 성대도 잘라내시지 그래요.” 하는 이들의 비아냥에는 코웃음을 쳐주기로 한다. 당신들은 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노래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 대신 마음을 뱉는다.


 첫 대선 투표 인증은 손등 대신 한동안 빠져살던 뮤지컬의 재관람 카드에 남겼다. 카드 이름은 ‘불꽃 카드’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이 주인공인 이 뮤지컬에서는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민중이라는 불씨’였고, 그 불씨가 존재해야 거대한 불꽃이 모습을 드러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습관처럼, 다짐처럼, 각오처럼 이런 대사가 반복된다. “누군가는 가야 하는 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삶과 세상을 노래하던 이들을 떠올리며 찍은 도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무엇을 노래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내 노래에 제목을 붙였다. 사랑, 사랑으로 해야겠다고.


2022년 3월 4일, 첫 대선 투표를 마치고, 짧은 글 긴 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의 호흡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