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수수 Dec 26. 2020

지금 우리가 대화하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산타할아버지 왔어요?

 12월 26일 아침.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간 줄 아는 첫째 아이가 물었다. 잔뜩 기대한 목소리였다.

 아니. 오늘은 안 와. 일 년 뒤 크리스마스에 온대.

 실망한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 우는 애들한텐 선물 안 준대요? 질문한다.


 최근 눈에 띄게 말이 늘은 아이와 이제는 대화까지 가능해졌다. 하루 종일 쉼 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가 귀찮아서 대충 대꾸하는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일 두세 번씩은 청승맞게 울컥하곤 한다.


 잠들기 전엔 아이가 "엄마 오늘은 최고 재밌었어요. 유튜브도 보고, 쿠팡도 보고, 기차도 봤어요."라고 말해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매주 월요일마다 원에서는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는데, 주말 내내 아이가 발표할 말을 외우게 했었다. 한 단어, 세 단어, 한 문장, 두 세 문장으로 조금씩 늘렸다가 길어지는 가정보육 탓에 그것마저도 하지 못했다. 월요일 하원 길이면 아이가 발표를 했을지 못했을지 초조했었다. 아이이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게 두려웠다. 그러던 아이가 오늘은 스스로 말했다. 너무 재미있었다고.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아이의 발달이 좋아졌다. 아이의 예민했던 감각들은 사라졌고, 연필을 쥐고 조금씩 글씨를 쓰고, 편식도 없어졌다. 그 밖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이가 자라주어 고맙다. 서울에 집을 사는 것보다 몇천 배는 더 원했던 아이의 성장이었다. 평균 속도로 아이가 성장했더라면 당연하게 느꼈을 거다. 제발 한마디만 해주기를,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대답 없는 질문을 수없이 건넸던 날들이 이제는 지나간 일들이 되었다.


 아이의 치료가 종료되고, 발달 검사에서 제 나이에 맞게 크고 있다는 소견을 들은 건 아니다. 그래도 설레발 떨고 싶다. 우리 아이가 이제 많이 자랐다고. 그래서 나는 이제 불행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감사한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아이를 키우겠다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덕후의 엄마로 산다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