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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Nov 05. 2020

덕후의 엄마로 산다는 건

열차를 기다리는 30분

 대여섯 살의 남자아이들은 로봇파, 자동차파로 나뉘곤 하는데, 우리 집 첫째 아이는 자동차파에 속한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바퀴 달린 것을 좋아했다. 타요, 토마스, 띠띠뽀, 브리오를 거쳐 작년에는 마을버스와 시내버스에 푹 빠져있다가 지금은 프라레일과 지하철, 기차에 꽂혀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어려워지자 아이는 쿠팡을 이용해 프라레일 기차 장난감을 구경했고, 프라레일을 사기 위해 칭찬 스티커를 모으고 싫어하던 이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으고 모아 국내에서 파는 프라레일 장난감은 모두 다 구매한 지경에 이르렀다. 프라레일을 모두 모은 아이는 매일 밤 기찻길을 만들고,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흉내를 내고, 상상 속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닌다.


  기차를 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코로나가 끝나면 열 번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기찻길 주변을 드라이브하곤 한다. 운이 좋으면 오고 가는 기차를 몇 번 구경하곤 하는데, 아이는 기차와 지하철을 볼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맥도날드 코스 (한강,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를 지나며 지하철을 볼 수 있다), 세브란스 코스 (세브란스 앞 기찻길)에 이어 가좌역 코스가 만들어졌다.



 요즘 아이와 나는 매일 하원길에 가좌역을 간다. 남편이 발견한 곳인데 기차도 지하철도 마음껏 볼 수 있었고, 아이는 그 30분을 위해 기분 좋게 등원했고 집에서도 제 할 일을 성실히 했다.


 앞으로 추워질 일만 남았는데 언제까지 하원 길에 역에 들려야 할진 알 수 없지만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이 일이 수고스럽지 않다. 식구들은 어디에 가면 더 편하게 기차를 볼 수 있을지 방법을 생각하고, 아이보다 우리가 더 기차 덕후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대구 2호선을 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선물로 대구 여행을 시켜주고 싶다. 그런 날이 머잖아 오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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