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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Jan 25. 2021

내가 해야 하는 일

아이의 다섯 번째 발달 검사

 새 학기를 앞두고 1~2월쯤이면 아이의 발달에 관련된 진단서가 필요하다. 장애 통합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일 년 만에 소아 정신과를 방문했고, 작년만 해도 병원=주사라는 생각에 울고 불고 쌩 난리를 피우던 아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들에게 예쁘다는 둥, 주사실은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둥 한참을 떠들었다. 한참을 떠든 아이는 놀이치료실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치료실에는 갖가지 장난감들이 있었다. 기대와 다르게 검사 일정을 잡기 위해 왔던 터라 놀이치료실에 들어가지 못했고,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해했다. 마트에 가는 것으로 아이를 달랬고, 덕분에 검사 비용만큼의 레고를 사줘야만 했다.  


 첫 검사는 두 돌 즈음이었다. 그냥 느린 거라고 굳게 믿었던 믿음이 어쩌면 아닐지도 모를 것 같단 생각이 서서히 들 때쯤이었다. 첫 결과를 듣던 날, 나와는 무관한 세계에 있을 것만 같았던 갖가지 병명들을 들었고 집에 가는 길에 괜한 설움이 북받쳐서 울었었다. 그래도 그때는 언어 치료 두세 달이면 아이가 말문을 열 줄 알았었다.


 두 번째 검사는 어린이집에서 장애 통합반을 권유받은 뒤였다. 검사를 위해서 대학병원을 찾았다. 아이를 낳은 병원이었다. 청각 검사를 위해 이비인후과, 베일리 검사를 위해 재활의학과, 소아과를 찾았었다. 대학병원에 자주 찾아가 검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거부하고 울었고, 아이가 왜 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사람들의 시선까지 견뎌야 했다. 겨우 검사를 마치고 느리다고 적힌 진단서를 받았었다.


 세 번째 검사는 또 다른 대학병원이었다. 유명한 재활의학과 선생님 이어어서 몇 달을 기다렸건만, 아이는 초진실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는 진료를 완고하게 거부했고, 몇 달을 기다린 검사를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느린 걸 아는 아이의 느리다는 진단서를 받기 위함이었고, 체력과 감정 소모가 큰 대학병원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 뒤에 치료실이 있는 소아정신과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의 검사는 훨씬 수월했다. 네 번째 검사는 그렇게 지나갔고, 이제 다섯 번째 검사를 앞두고 있다.


 다섯 번째 검사를 앞두고 어쩌면 좀 나아졌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작년에 받은 2년 3개월 지연이 한 달이라도 줄어든다면 무엇이라도 다 해주겠다고 아이에게 말하는 나를 보고 어머님은 몰래 눈물을 닦았다. 어머님은 괜한 기대하지 말라고, 우리가 봐도 아직은 부족한 게 보인다고 충고했다. 결과에 또 좌절할 나를 걱정해 한 말이었을 거다.


 그동안은 아이가 병원을 거부해서 힘들었건만 병원에 잘 들어가도 마음은 안 좋았다. 나도 아이도 이제 이 과정이 익숙해진 것이다. 태어났을 때 체중부터 목 가누기, 옹알이, 아이의 교우관계까지 모든 걸 작성해야 하는 설문지도 다섯 번의 검사를 제외하고도 간이로 받은 검사들로 인해 이제 다 외울 정도다.


 익숙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검사와 결과를 앞두고 긴장이 된다. 일 년 동안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랄까. 내 아이가 자라는 것만 봤지, 또래 친구들이 얼마나 자랐는지는 망각했다. 덤덤하다가도 좌절할 정도의 결과를 받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내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고 아이에게 좋은 것을 찾아야 할 거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고, 해야 할 일 일거다.


책을 보는 아이와 아이가 보는 책을 보는 반려견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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