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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Apr 13. 2021

고상하고 쿨하게 살고 싶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낄 때

 어린 시절, 주워들은 욕을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다가 엄마한테 뒤지게 맞은 날이 있었다. 성적이 안 좋아서 뒤지게 맞았고, 용돈을 함부로 써서 뒤지게 맞았고, 지갑 속에 엄마 돈을 훔쳐서 뒤지게 맞았고, 반찬 투정을 해서 쫄쫄 굶은 날도 있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는 북한 어린이와 아프리카 친구들을 생각해서 밥도 남기면 안 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엄마는 더 이상 매를 들지 않았다. 그렇게 무서웠던 사랑의 매는 먼지를 털 때 말곤 사용할 일이 없어졌고, 지금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엄마는 더 이상 매질이 효과적이지 않아서 들지 않았다 했다. 


 엄마가 매를 들지 않을 즈음이었다. 

 공부를 잘했다는 엄마의 학창 시절 이야기는 거짓말 같았다. 엄마는 톨스토이도 몰랐고, 엘가도 몰랐다. A6 짝퉁 잠바를 사줘서, 어느 해의 겨울 나는 내내 짝퉁 잠바를 입고 다녔었다. 그것이 짝퉁인 걸 눈치챈 친구에게 놀림을 당했지만 엄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따뜻한 잠바를 입었으니 된 거 아니냐는 거였다.  나도 아디다스, 나이키가 입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서 결심했다. 나는 고상하고 쿨하게 살 거야!


 아이를 데리고 전시회를 다니고, 연습용 피아노를 사주고, 서점을 다니며 책을 사줬다. 전국 곳곳, 해외에서까지 아이가 좋아하는 키즈카페를 찾아다녔고, 구하기 어려운 장난감을 찾아 사주었고, 아이가 가고 싶다는 곳은 어디든 갔었다. 고상하고 쿨한 엄마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찰나의 순간, 인스타그램에서는.  


 태권도 학원에 푹 빠진 첫째 아이는 지난주부터 등원 거부를 했었다. 태권도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에 안 가고 태권도만 가겠다는 거였다. 


 고집이 쌔면 순할 수가 없는데, 고집이 쌔지만 순한 우리 첫째 아이가 원에 가지 않고 할머니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은 "그래 집에서 쉬어라"라고 했다. 둘째 날도 아이는 등원을 거부했다. 아이는 상황을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원 앞에 슈퍼에서 오예스 두 박스를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만 하고 오라고 했다. 교실에 올라가기만 하면 잘 놀고 공부도 잘하고 돌아왔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했지만 간식을 들려 보내는 건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이의 등원 거부는 주말이 지나면 더 심해질 것을 예감했다. 정면 승부를 봐야 했다. 


 월요일이 왔고, 아이는 역시나 등원을 거부했다. 원 앞에서 아이와 나는 한참 실랑이를 피웠다. 선생님이 내려왔지만 아이의 고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아이의 장난감들을 현관 밖으로 내보냈다. 

 "장난감 살 때마다 엄마랑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이건 다 버려 버릴 거야!"

 아이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이와 함께 원으로 다시 돌아갔으나 아이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난 안 갈 거야."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현관에 내놓은 아이의 장난감들을 차 트렁크에 싣었다.

 "너 장난감들 모두 다 고아원에 있는 친구들에게 줄 거야." 

 아이에게 차근차근 말하는 것은 효과가 없었고, 대가를 주는 방법도 좋지 않았다. 때리기는 싫었다. 그래서 고아원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다시 한번 더 펑펑 울은 아이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등원했다. 


 "엄마 고아원에는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살아요?"
 고아원에 대해 묻는 아이를 보며 아차 싶었다. 내가 뱉어버린 말 때문에 아이는 고아원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될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내가 가진 북한과 아프리카의 이미지처럼. 얼마 전엔 간식만 먹겠다고 우기는 아이 때문에 마당으로 고래밥을 던졌는데, 어제는 아이에게 편견을 던져버렸다. 

 

 어제의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기분 좋게 등원했다. 내 얘기를 들은 사촌언니는 드디어 너도 애랑 싸우냐며 깔깔거렸다. 전문가들은 폭력을 쓰지 말고 윽박지르지 말고 단호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라는데,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을 써야 한다'라는 소설 작법처럼 들린다. 나도 알지. 근데 못하는 것뿐이지! 어쩌라고! 싶다. 


내가 되고 싶었던 엄마는 이렇게 서툴고 번번이 실수하고 후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멋진 이상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가 해야 할 일에 고상하고 쿨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고아원의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주겠다는 협박 말고 더 좋은 대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유난히 어린 시절의 젊었던 엄마가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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