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한 때를 기다렸다. 완벽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완벽하게 글에만 몰두할 수 있을 때, 완벽한 작품이 나올 때, 완벽하게 식탁을 차릴 수 있을 때. 돌이켜보니 평생 완벽한 때를 기다렸는데, 완벽한 때가 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고, 작가를 꿈꿨으나 작가가 되지 못했고, 전업 주부지만 밥 차리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당연하게 완벽하고 싶은 맘이 아이에게도 간다. 초연해지고자 노력했으나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내내 초조한 마음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무서웠다. 아이가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받았던 부정적인 피드백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선생님들의 피드백도 무섭고 아이가 겪어내야 할 시련도 무서웠다. 더 솔직하게는 나는 아이의 새 출발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의 발달이 많이 좋아졌지만 사회성과 집중력에선 부족함이 보였다. 학교에 간다고 설레 하는 아이를 두고 어제는 입학 유예 서류를 준비했다. 아이와 밤에 마지막으로 상의를 한 뒤에 일 년 더 어린이집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더 나아진 상태로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 일 년이면 지금보단 많이 평범해질 것 같았다. 유예 쪽으로 마음이 점점 더 기울었다.
하루 종일 유예를 알아보던 나를 설득한 건 아이의 선생님들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이의 치료를 맡아주시는 선생님은 원래 계획대로 진학하는 것이 아이의 발달에 더 좋을 것이고, 아이의 자존감에 더 좋겠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뻘짓을 하고 나니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도 하는 것, 그러면서 계속 성장하는 것, 나에게 이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에 대해서 하나씩 알게 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뼈아프게 인정한다. 아이는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조금 더 용기를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