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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레꼬레 Mar 07. 2024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정말 아무 기대 안 했고, 뭔가 약간 정치적인 색이 조금이라도 묻어나면 책을 덮겠다는 생각을 하고선

이 책을 골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끝까지 다 읽게 된 에세이집이다.


일단 기본 필력이 바탕이 되어 있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인생의 여러 자락을 굽이굽이 겪은

사건과 사람들이 포개져서 굉장히 풍성하고 흥미로운, 그러면서 유머 또한 잃지 않은 그런 에세이집이

탄생하지 않았나 한다.


술을 매개체로 하여, 술과 관련된 사람들

작가의 기억 속에서 술을 함께했던 그들과의 추억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외국인도 있고, 외국에서의 일화도 있고,

돈 많은 회장님도 있고, 외국의 정치인도 있고,

심지어 일본 야쿠자도 출현해서 놀라웠는데

놀라움의 끝판왕은 정지아 작가가 남북작가 교류의 일환 이런 형식으로서

여러 문학 작가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적도 있다는 것. 바로 그곳에서 먹은 술에 대한

일화도 나와서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어떠한 설정이나 배경이 특이하다고 해서 특별히 그 일화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글이 더해지면 평범한 사람도 평범하지 않게 느껴지고

그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듯이 

아무튼 이 책은 너무 재미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이 에피소드이다.

초원의 단 하루, 환상적인 일이 일어난다.


너무 재미있어서 사진까지 찍었다네.

아프리카 초원의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자연스레 술처럼 발효한 사과를

동물들이 하나둘씩 먹고선 다들 취해서 먹이피라미드도 잊어버린 채

모두들 곯아떨어지는 어느 하루에 대한 에피소드.

동물들이 술에 취해가지고 사자도 원숭이도 모두 경계를 풀고 잠들다가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서 가장 밑에 위치한 먹이사슬 동물들이 놀라서 도망가고 

가장 최상위 포식자 동물들은 어슬렁어슬렁 일어나서 서식지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독일어로 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어느 한 에피소드라고 하지만 너무나 동화같이 느껴져서

정말 대단한 술에 관한 찬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아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게 만든, 실로 대단한 책.

술을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수 있을 책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새삼 술이란 이런 것이지를 확인하게끔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술은 이런 매력이 있는 것임을 공유하게끔.


작가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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