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가 무엇인지 공부할 수 있는 교본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120 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이 섬세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 글방에서 사진 한 장을 '설명'이 아니라 '묘사'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사진을 그리듯이, 독자가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듯 하라는데 쉽지 않았다. 마침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게 '묘사'겠구나 싶었다.
첫 문단부터 스산한 늦가을의 침울한 도시의 느낌이 생생하다. 저자는 임신하고 강물에 뛰어든 여자를 암시하고 싶었다는데 처음 읽어서는 그런 뉘앙스까지는 알 수 없었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p.11)
맨 앞장에는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라고 쓰여있고, 다음 장에는 '아일랜드 공화국은 모든 국민에게 종교적, 시민적 자유,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국가 전체와 모든 부문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고 모든 아동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의를 천명한다'라는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며서 차분하고 슬프면서 묵직한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안주인의 배려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펄롱의 일상과 수도원에서 만난 소녀의 절박한 상황이 함께 흐른다. 필롱의 내면세계의 변화가 주변의 상황과 인물 묘사와 엮이며 강물처럼 흔들리고 요동치지만 힘 있게 흘러간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1996년까지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시키며 여성과 아이의 노동을 착취했다.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여성과 아이들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곳은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국가와 함께 운영되었고 정부는 2013년에야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마지막 설명을 읽고 책을 처음부터 다시 넘겨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수도원에 석탄과 땔감을 공급하러 갔다가 만난 소녀를, 처음에는 못 본척했으나, 결국 손잡고 데리고 나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비장하면서 따뜻하게, 희망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p.121)
세상 어디에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착취당하고 죽어간 많은 생명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쓴 책이고, 그 목소리가 나직하고, 잔잔해서 더욱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