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방학 전에 축제를 한다. 주로 동아리를 중심으로 주제를 정해 교실을 꾸민다. 동아리와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것들도 많다. 즐기는 것 같지만 귀찮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원봉사부가 일본폐가 체험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은 것이다. 주로 귀신의 집 같은 콘셉트이다. 사실 꾸미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귀찮아한다는 것은 순전히 ‘정말 이런 행사를 귀찮아하는 나의 생각’ 일 확률이 높다.
허접한 것들도 꽤 있다. 조향부의 향수 만들기는 용액과 용기를 구매하여 비율에 맞춰 섞기만 하면 되는 것들이다. 지구약학과학부에서는 립글로스를 만드는데 이것도 역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향을 더해 섞기만 하면 된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발빠름에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다. 그래도 공짜로 향수와 립글로스를 하나 득템할 수 있기에 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오전에 강당에서 전체 공연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관심 있는 반에 들어가 체험하는 식이다. 단편영화반은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는데, 미리 가서 줄을 서 있어야 하기도 한다. 팝콘과 콜라를 공짜로 나눠주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블라인드 데이트와 방탈출 게임은 가장 인기가 많아 이미 예약이 마감되기도 한다. 빡빡한 일정에 반나절이라고 짬내서 공식적으로 놀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올해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융합과학부의 롤러코스트다. 교실에서 어떻게 롤러코스트를 만들었나 궁금해서 가보았다. 공중으로 한 바퀴는 휘돌려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가장 궁금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책상 더미 위에서 한번 옆으로 꺾여서 내려가는 미끄럼틀에 웃음이 빵 터졌다. 책상과 의자와 나무 판때기를 이용하여 비스듬하게 내리막 길을 만들었고, 플라스틱 바구니에 바퀴를 달고 안에 방석을 깐 것이 전부였다.
마침 안전점검 중이라고 해서 잠시 기다렸다. 커브 도는 모서리에 튼튼한 남학생이 지키고 서있었다. 플라스틱 바구니의 방향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몇 명이 시범으로 운행을 해보았다. 안전해 보였고 무엇보다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한번 타 보았다. 70Kg 이하만 탈 수 있었다.
바구니에 몸을 구겨서 넣고 앉으니 얼굴 가리는 용도로 방석을 쥐어주었다. 마지막에 안전바에 부딪힐 때 머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다소 긴장이 되었다. 뒤에서 플라스틱 차를 잡고 있던 학생이 살짝 밀어주었다.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커브에서 방향을 어설프게 바꿔주는 바람에 흔들였지만 무사히 도착점에 잘 가서 부딪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수제 롤러코스터였다. 그냥 미끄럼틀이라고 했으면 안 타고 싶었을 것 같다.
어제 한 여학생의 아버지와 오빠가 와서 8시간 넘게 만들었다는 뒷소문을 들었다. 저녁에 담당 선생님이 교실을 돌아보고 있는데 밤 9시까지 두 어른이 학생들과 땀을 흘리며 마지막 안전을 점검하고 있었단다. 자세히 살펴보니 의자 하나하나를 테이프로 감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 두었고, 내려가는 길에서 플라스틱 차가 이탈하지 못하게 난간을 세워 두었다. 나무판을 세우고 쫄대 나무로 하나하나 못 질 하여 고정 하였다.
첫눈에 웃음이 빵 터진 미끄럼틀이지만 텍사스에 있다는 골리앗보다 더 멋지고 신나는 롤러코스터였다. 고등학교 생활이 힘든 딸내미를 생각하며 하루라도 동심의 세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을 아빠의 마음이 전해져서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