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3 교실 풍경
오늘 아침 1교시 어느 고3 교실 풍경 묘사
29개 책상이 놓여있는 교실에 11명이 앉아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도 있을 거고, 오늘 못 나오는 아이도 있을 거다. 반정도의 아이들은 대형 자습실에 갔다. 집중해서 공부하려는 학생을 모아 놓고 수능 시험 리듬대로 100분 공부하고 20분 쉬는 시간표를 따로 운영하는 곳이다. 정시를 지원하거나 수시합격 후 수능최저를 맞추기 위해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해서 배려차원으로 특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집단의지가 작동되는 곳이다.
남아 있는 11명 중 공부하는 아이는 5명이다. 아, 지금 보니 2명이고 나머지 3명은 책을 펴 놓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핸드폰을 들고 있다. 덩치가 큰 남학생은 반바지 차림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화면 속 뭔가에 빠져있다. 프리미어 리그전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녀석은 팔쿠션을 턱에 괴고 미소를 띤 채 지그시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지금은 아예 팔을 베고 누웠다. 책상과 한 몸인듯 편안해 보인다. 안경 낀 여학생은 왼쪽 팔을 베고 누운 자세로 연신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이리저리 비비고 있다 여학생은 두 명뿐이다. 다른 한 명은 핸드폰을 잡고 엄지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더니 다시 수학문제와 고투를 벌이고 있다.
이제 3명이 자고 있다. 귀에 콩나물 대가리 같은 이어버드를 끼고 맨 뒤에 앉아 있는 녀석은 콧대가 반듯하게 잘 생겼다. 까만색 맨투맨을 입고 오른손에 핸드폰을 가볍게 얹은 채 그윽한 눈빛과 심오한 표정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한 번씩 입꼬리를 오른쪽으로 올려 씩 웃는다. 제법 배우 같기도 하다.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는 아이는 3명이다. 다리를 달달 떨며 까만 아날로그 수능시계를 찬 왼손을 오른쪽 어깨에 올려 목을 지지하고 있는 녀석의 책상 위에는 빨간색의 에너지 음료가 놓여있다. 카페인이 10mg이 들어간 각성 음료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시험지를 눈앞에 바짝 들이 대고 있다. 해결책이 떠올랐는지 태블릿 위에 뭔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다.
창가 책상에서 시종일관 다리를 쩍 벌리고 바위처럼 앉아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녀석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재작년 우리 반 녀석이다. 언제나 그렇듯 안정감이 있다. 이제야 두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고 하품을 크게 한번 하더니 창문을 닫는다. 바람이 서늘한 아침이다. 팔짱을 끼고 문제지를 응시하더니 다음장으로 넘겨 아까의 자세로 돌아가 펜을 든다.
콧대가 잘 생긴 녀석이 일어나 흔들흔들 걸어서 앞으로 나온다. 키도 크군. 눈이 마주치자 입모양으로 화장실이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더니 초승달 눈웃음을 날리더니 앞 문으로 나간다. 잠시 후 복도로 뒷반 남학생 하나가 휘적휘적 걸어간다. 녀석의 친구다. 화장실에서 만나기로 했나? 음. 핸드폰을 두고 가라는 말을 잊었군.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이제 교실에 10명이 남았고 3명은 깊이 잠들었다. 막대사탕은 아직 덜 녹았고, 풀어야 할 문제도 아직 많이 남았다. 핸드폰이 없으면 저 아이들은 뭘 하려나. 4층 교실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근대 너흰 자습실 가지 않고 왜 여기 남아있어? 아, 거긴 인원이 너무 많아 공기가 탑탑해요. 숨 막혀요. 여기가 더 좋아요. 나름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이제 수능이 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