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부정행위 학생 처리를 보고
수능 1교시 시작종이 울리자 온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 고사실 감독에게 시험지 뭉치와 필요한 자료를 넣은 가방을 전달한 고사본부에서도 모두 숨을 죽이고 잠시 그 고요함을 확인했다. 올해도 여지없이 수능의 톱니바퀴는 돌아갔다. 그 톱니바퀴에 옷자락 하나라도 걸리지 않게 수험생도 고사 운영자도 초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는 무자비하고 예민하고 날카롭다.
부정행위자가 나온 것은 역시 4교시였다. 마지막 시간 한 교실당 6개의 무거운 시험지 뭉치가 빠져나간 후 안도의 숨을 내쉬며 3교시 답지를 검토하고 있었다. 수험번호를 잘못 표기한 경우도 있고, 도장이 빠진 경우도 있고, 이름을 쓰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를 재검, 삼검까지 한 후 확인 도장을 찍고 상자에 넣어서 봉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4교시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중 두 과목을 본다. 첫 과목을 볼 때 두 번째 과목은 책상 아래에 내려두어야 한다. 방송으로도 알리고 감독교사도 몇 번씩 주지를 시키지만 체력도 방전되기 시작하는 4교시에 실수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한 학생이 두 번째 과목 시험지를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이 발견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교무부장과 교감이 급히 해당 교실로 올라갔다.
그 학생은 2년 전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을 보러 왔다. 모의평가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3년간 훈련이 된 일반고 학생과는 다른 환경이다. 방송과 감독교사의 주의사항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시험지가 워낙 많아 (8과목의 시험지 중 2개를 골라야 한다.) 그것에 신경 쓰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4교시 시험을 다 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진술서를 쓰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학생은 하루종일 애써 본 전 과목이 무효처리 되었다. 단지 시험지가 책상 위에 있었다는 이유로. 4교시 후 아수라장 같은 고사본부에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마무리 정리를 했다. 여기저기서 탄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에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이번 수능의 필적 확인란 문구다.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곽의영 시인의 ‘하나뿐인 예쁜 딸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나는 너의 이름조차 아끼는 아빠
너의 이름 아래엔
행운의 날개가 펄럭인다
웃어서 저절로 얻어진
공주 천사라는 별명처럼
암 너는 천사로 세상에 온 내 딸
빗물 촉촉이 내려
토사 속에서
연둣빛 싹이 트는 봄처럼 너는 곱다
예쁜 나이, 예쁜 딸아
늘 그렇게 곱게 한 송이 꽃으로
시간을 꽁꽁 묶어 매고 살아라
너는 나에게 지상 최고의 기쁨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함박꽃 같은 내 딸아
수능의 톱니바퀴는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고 다시 내년을 향해 불가항력의 힘으로 굴러가고 있다. 누가 멈춰줬으면 좋겠다. 젊고 밝은 아이들이 사회의 틀 속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데, ‘큰 꿈’을 펼 칠 날갯짓조차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제도는 언제나 사라질지, '예쁜 나이의 예쁜 딸'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