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와장애인 주차구역
동그란 모양의 장애인 주차 가능 표지의 색은 두 가지다. 노란색은 장애인 본인이 운전하는 경우, 흰색은 보호자가 운전하는 경우 발급한다. 흰색 표지는 장애인이 동승할 경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할 수 있다. 연필이는 중증 발달장애이고 운전할 수 없으므로 흰색 표지를 발급받았다.
지금은 따로 살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같이 어딜 갈 일이 없지만 연필이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장애인 주차구역에 수월하게 주차하지 못했던 경험이 몇 번 있다. 아마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부모님과 연필이만 다닐 때도 많이 있었겠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비어있음에도 주차에 어려움을 겪거나 불쾌한 경험을 한 것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진다.
첫째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는 경우다. 바쁜 주차장 같은 곳에서는 수신호 등으로 주차안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지만 간혹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가는 길을 고깔이나 표지, 또는 자신의 몸으로 막고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장애인 주차구역을 제외한 그 구역이 만차이거나 주차 혼잡도를 분산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가는 길이 막혀 그들의 유도를 따라가면 또 다른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보통 장애인 차량이라면서 주차 가능 표지를 가리키면 막았던 길을 열어준다. 아마도 표지를 못 봐서 그렇겠지. 그런데 진짜 가끔 우리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무조건 자신이 유도하는 방향으로만 가라고 수신호 한다. 왜 못 가는지 이유라도 설명해주면 포기하고 다른 자리에 주차하든지 그냥 돌아가든지 할 텐데.
가장 최고로 기억 남는 사람을 꼽자면 안 들리는 척 수신호 하다가 뒤에 차 밀린 거 안 보이냐고 했다. 굳이 밀린 이유를 꼽자면 원활한 주차안내를 못한 자신 탓인데. 결국 다른 사람이 와서 사과하더니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안내했다. 그 막무가내였던 사람은 아마도 무조건 ‘이 쪽은 차를 주차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고 열심히 그걸 수행했던 걸 거라 생각하고 너무 미워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 사람도 이제 그때보다 나이를 꽤 먹었을 텐데 그때보다는 좀 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길.
둘째는 주차 후 자격이 있는지를 자신이 검증하려고 하는 경우다. 좀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몇 년 전 차에서 내려서 가던 우리 가족에게 누군가 저기요, 여기 장애인 주차구역이에요!라고 했다. 돌아다보니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대부분 그렇다. 이 사람처럼 쏘아붙이듯이 말하든 상냥하게 타이르듯 말하든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임을 우리에게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비슷했다. 네, 장애인 차량입니다. 그 사람은 굳이 가까이 가서 주차 가능 표지에 적인 차 번호와 우리 차 번호판을 대조해봤다. 우리를 부르기 전에 그것부터 확인하지. 아니, 그냥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주차 신고를 하지 그랬어. 그러면 우리가 소명했으면 될 일인데. 그리고 물었다. 누가 장애인이에요? 우리는 연필이가 장애인이라고 했다. 이러면 사과는 아니더라도 끝낼 법도 한데. 그때 그 사람은 장애인증 있어요?라고 물었다. 장애인증이라는 건 없다. 장애인등록증이나 장애인복지카드 중에 발급받는다. 아무튼 뭔가 증명되는 걸 보여달라는 말 같은데, 우리가 왜 그걸 당신에게 보여줘야 하지? 순순히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기 민망해서 자신에게 ‘증’을 보여 달라고 했던 걸까?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할 만해서 하는 건데. 왜 이따금 이런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해명하면서 기분 상해야 하는 걸까. 이들이 생각하는 장애인이란 어떤 사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