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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레 Aug 28. 2023

미운 말 할아버지의 장례식

미운 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몸이 더 쇠약해진 할아버지는, 3년 동안 요양원과 집을 드나들며 죽을 날만 기다리며 지내신다고 어른들의 대화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눈 뜨면 온갖 구박을 쏟아냈던 할머니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없었을 거라고 엄마는 검은 옷을 갈아입으며 얘기했다. “너 오늘 스케줄 없다고 했지? 나도 가기 싫단 말이야.” 무슨 말이든 돌려 말하는 재주가 있는 그녀는 같이 가자는 말을 그렇게 했다. 결국 수경은 놀고 있다는 이유로 차에 실려 장례식장에 끌려갔다.


그를 미운 말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건 오래된 일이었다. 가끔씩 만날 일이 생길 때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도 기억을 냉수 한 컵에 말아 드셨는지, 왜 인사도 안 하고 앉아있느냐고 사람들 앞에서 화를 냈다. 처음엔 치매인가? 생각했지만 기분이 나쁘면 누구 하나를 정해놓고 혼을 내는 게 취미 같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뭐 하고 자빠졌었냐?”라는 말은 보고 싶다는 뜻이고, “커피나 타와라”라는 말은 “얼마나 컸는지 보자”는 말일 거라고 이해심을 극대화시켜 보았지만, 결국 미운 말을 하는 할아버지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합석하는 자리를 피해왔지만, 오늘은 별 수 없었다.


“체온 체크 하시고 QR 코드 찍으세요.”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코로나 시국답게 검사가 철저했다. 안내판에는 미운 말 할아버지가 웃지도 않고 찍은 하얗게 바랜 영정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이 들면서는 성격이 얼굴에 드러난다더니 꼭 그렇게 생기셨네요.’ 사인펜으로 엄마 이름을 쓰며 수경은 세모눈을 뜨고 사진을 한번 째려보았다. 장례식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 한 층 더 걸어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운 5층이었다.


할아버지가 두고 간 아들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도 어느덧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중에 첫째 아들은 나이가 들수록 인상과 어투가 아버지를 닮아갔다. 특히 미간의 주름이 똑같아졌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를 가장 싫어했다. 노련하게 향을 피우는 엄마를 따라 두 번 반의 절을 올린 수경은 가봤던 장례식장의 풍경을 떠올렸다. 상주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고생 많지” 아니면 “밥은 먹었어?”정도가 좋겠군. 그럼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라던가 “멀리 오느라 힘들었지” 정도를 듣게 되겠지. 어울리는 대화 몇 개를 준비하고 고개를 들었다.


“너도 많이 늙었구나” 첫째 아들이 어느새 먼저 일어났는지 눈도 마주치기 전에 얘기했다. 수경은 귀를 의심했다. ‘마스크와 안경으로 가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기는 한 걸까?’ 수년간 장례식을 갔지만 상주의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순간 들어온 아무 말 펀치에 말문이 막혀서 준비한 말은 하지도 못했다. 엄마는 재빨리 눈치를 채고 선약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한다고 둘러댔지만, 세 아들의 성화에 이끌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육개장이나 음료수 등 어떤 것에도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말없이 벽에 걸린 시계만 보고 앉아있었다. 입을 열면 장례식장 어딘가에 가라앉아있던 미운 말이 입에서 스멀스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집은 어떻게 할 거냐는 엄마의 질문에 “아버지 집 월세 받아서 소주에 족발이나 사 먹을라고. 그 정도는 나오겠지 뭐” 실실 웃으며 첫째 아들이 말했다. 수경은 최선을 다해 귀도 닫으려 노력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그녀의 초점이 멍해지자 엄마는 선약에 늦었다며 일어났다. 수경은 한 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첫째 아들이 어울리지 않게 배웅을 하겠다고 닫히는 문을 잡고 들어왔다. 4명이 타면 꽉 차는 떡시루 같은 엘리베이터에 할 수 없이 첫째 아들과 마주 보고 서게 되었다. 갑자기 그의 손이 수경 얼굴의 마스크를 휙 내렸다. “그래도 얼굴은 보고 가야지”


‘코로나 시국에 뭐야 이거…’ 하는 생각에 욕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는가 싶더니 구토가 올라왔다. 수경은 황급히 입을 막고 화장실로 튀어 들어갔다. 먹은 게 없으니 헛구역질만 나왔다. ‘하…. 왜 이러지’ 한숨을 쉬고 잠시 앉아있는데 남녀 공용인 화장실에 첫째 아들이 입구에 서서 “괜찮냐?”라고 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수경의 입에서 “괜찮겠냐 이놈의 새끼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첫째 아들이 문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자 자신도 모르게 쇼미 더머니 랩배틀처럼 욕이 튀어나왔다. “요양원에 있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새끼들이 뒤지니까 와서 지랄들 하고 자빠졌네” “야 너 미쳤어?” 그가 이번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입도 멈추지 않았다.  “3년 전에 네 엄마 죽었을 때 뭐라고 지껄였냐? 어른들 가시기 전에 잘한다고 생쑈를 하고 지랄하더니 그 집으로 소주에 족발이나 처먹을라고 준비하고 있는 새끼를 아들이라고 키웠네 니미 천벌 받을 노무 새끼” ‘헙!’ 수경은 마스크를 다시 쓰고 입을 막았다. 욕이 토처럼 계속 나오려고 했다.


쾅쾅쾅! 쾅쾅쾅! 말을 하지 못하니 수경은 손과 발로 문을 두드렸다. 첫째 아들은 문득, 그 소리가 관 속에서 들리는 소리 같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쾅쾅쾅! 화장실 밖의 큰 소리가 잦아들자 수경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검은 마스크 위로 첫째 아들의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 모습이 마치 미운말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같았다. 수경은 마스크 위에 두 손을 힘껏 누르고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 할 것 같았다. 첫째 아들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아니,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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