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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향 Jul 18. 2024

서늘한 저녁

해 질 녘 산책을 나갔다가 호숫가 벤치에 앉아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며 쉬고 있었다.
옆 벤치에 앉아있던 낯선 여자가 말을 건네 왔다.
"저 구름 좀 보세요, 보랏빛이네요, 참 이뻐요!"  
곱게 나이 들어가는 그녀는 혼자 산다고 했다. 남편이 2년 반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홀로 된 후 한동안 너무 두렵고 슬퍼서 집 밖을 나오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최근에야 자치센터에서 라인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종종 이곳으로 산책을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라인댄스 수강생 중 자신이 제일 나이가 많아 자꾸만 순서가 헷갈리고 틀리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도 했다.
2녀 1남의 자녀를 두었지만 잘 키운 아들과 딸 하나는 멀리 미국에서 살고 무뚝뚝한 딸 하나 서울에 가까이 살아도 바빠서 외로운 엄마를 돌아볼 여력이 없는지 매번 섭섭하고 쓸쓸하다고 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주절주절 오래도록 수다를 풀어내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오래 글쎄,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으면...)
홀로 산책을 나온 내가 혼자 사는 줄 알았나 보다.
70 후반인데도 60대로 보이는 고운 모습을 보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아 보여 이젠 여행도 좀 다니시고 친구들도 만나 수다도 떨고 하시라 했더니 이제껏 열심히 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천지사방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조차 마땅치가 않다고 한다.
어두워지자 바람이 드세지고 기온이 내려가 추워졌다.
일어서는 내게 낯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며 웃는다.
300여 미터쯤 나란히 함께 걸어와 헤어졌다.
침침한 가로등 아래 기운 없이 걸어가는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이 너무도 쓸쓸해 보여 마음이 시린 저녁이었다.
딸이 있어도 외롭고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그녀,
노년의 적막한 뒷모습이었다.
머잖아 그려질 나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서늘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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