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단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 Jul 14. 2023

오로라

진짜 어떤 것인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고, 또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tvN <텐트 밖은 유럽: 노르웨이>라는 여행 예능에 눈이 멈췄다. 연예인들끼리 해외로 놀러 간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지나가는 장면에 순간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오로라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방송의 배경은 노르웨이 트롬쇠였지만 꼭 반년 전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내 마음이 되살아났다.


오로라 출몰국가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주목적이 아니었다 해도 내심 기대하며 애써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실시간 오로라 지수를 알려주는 어플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밤하늘에 괜히 휴대폰 카메라를 대어 보고, 징징거려도 보았다가 빌어도 보았다가 급기야 하나님과 딜까지 치고, 며칠 허탕 치다가 마침내 마주친 희미한 한줄기 초록기둥에 흥분해서 차를 몰고 달려 나가는 것은 나를 포함해 오로라를 보러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공유하는 경험이다.


그러나 실제 본 오로라에 대한 증언만큼은 각인각색이다. 그들 중 얼마는 오로라를 보지 못했고, 본 사람들 중 얼마는 어렴풋한 흔적만을, 또 몇몇은 우주가 내려앉을 듯 휘황찬란하고 극적인 우주쇼를 보았고, 그 양쪽 끝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격담이 있다. 내 두 눈으로 봤던 장엄한 오로라는 아마도 중간에서 조금 더 극적으로 기울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본 적이 없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서는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알 방법이 없다. 내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기준과 비교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련된 연구나 측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오로라를 보지 않고서 그 크기나 강도를 가늠할 수 없다. 물론 개인의 감상이나 설명으로 비교할 수도 없다. 감수성이나 기대감, 표현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으로 송출하는 질 좋은 영상과 생생한 리액션도 확실한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광학기기와 편집기술, 방송국 놈들의 조합이 어떤 창조물을 낼 수 있는지 우리 모두 잘 아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로라가 진짜 어떤 것인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고, 또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북유럽 국가에 살고 있거나 오로라 헌팅을 수없이 다녀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일천한 경험일 텐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아온 시간 동안 쉼 없이 펼쳐졌던 우주적 현상을 티끌만큼 맛보았다고 해서 내 경험을 기준 삼아 다른 경험을 재단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자기가 본 오로라보다 환상적인 건 없을 거라 했다. 누군가는 오로라는 두 가지 색 이상이 있어야 진짜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오로라를 봤다는 사람들의 호들갑은 다 과장이라고 했다. 본인의 실증과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정확하게 안다고 말하기 쉽다. 내가 봤으니까, 내가 해봤으니까, 내가 거기 있었으니까, 나도 꽤나 안다고, 그 기준으로 볼 때 너의 경험은 이러저러하다고, 자기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그 자신감의 탈을 쓴 무례함을 나는 경계한다. 일상적이고 우호적인 말에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다면 이런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이 무례함은 친절함, 권위, 친밀감, 배려 등 거부하기 어려운 단어들 아래 숨겨져 있곤 하니까.


방송에서는 결국 여행 10일 차에 기다리던 오로라를 보는 장면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실제 그들이 본 오로라가 어떤 색이었고 얼마나 큰 규모였으며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 따위를 따져보고 '내가 본 오로라가 더 낫다'를 주장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색감 보정하느라 사람 형체는 브라운관 화면조정하듯 날아간 듯 보였지만 실제 색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나와 내 동행들의 여행 속에도 있었던 한 장면만을 보고 싶었다. 멀리서 피어오르던 오로라가 하늘을 뒤덮고 커튼처럼 일렁이자 모두 탄성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순간. 연예인들과 우리가 본 오로라는 분명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만나고, 감동했다는 경험을 공유했고, 그건 공유한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오로라를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훈수 둘 것도 없고, 아직 보지 못한 사람 앞에서 지구의 경이를 다 경험한 듯 으스댈 이유도 없다. 그저 내가 본 오로라가 전부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때에 본인만의 오로라를 만날 것이며, 그건 누가 뭐래도 그들 각자에게는 진짜 오로라라는 것,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오로라가 아무 의미도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나 물어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내가 만난 오로라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하는 거 절대 금지. 허세로 똘똘 뭉친 우스운 사람 되기 싫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신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