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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Nov 22. 2023

방구석 깊숙이 마약을 숨긴 사연

항암 치료 환자용 진통제

철철이 온 집안 제습제와 방충제를 갈아 넣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수명을 다한 녀석들을 옷장 깊숙이에서 찾아내어 새것으로 잘 교체하고 나면, 한가득 나오는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분리해 버리기까지 반나절이 훌쩍 지난다. 가족 넷이 살던 집에서 혼자 살림살이하고 있는 나에게는 평소에 손대지 않는 집 안 구석구석까지 돌아볼 수 있는 일 년 중 몇 안 되는 시기이다. 행거 아래 먼지 쌓인 제습제를 꺼내며 진공청소기를 돌리다가 청소기 끝에 걸리적거리던 가방이 하나 딸려 나왔다. 엄마의 소지품이 들어있는 가방이다. 주인 잃은 지 7년 넘도록 묵직한 상태로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가 결정하면 오늘 당장이라도 이 집에서 치워버릴 수 있는.


아무리 이 집이 나 혼자 살기 넓다 해도, 지난 7년 하고도 8개월간 이 가방을 한 번도 안 열어봤을 리가 없다. 처음 발견하고는 통곡하느라 뭐가 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퍼를 닫았을 테고, 가방 안을 채운 작은 지퍼백과 종이 쪼가리를 열어서 자세히 들여다보기까지 또 몇 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암보험도 하나 없으면서 진료비 영수증을 차곡차곡 모아둔 엄마의 쓸데없는 꼼꼼함이 뒤늦게 나를 많이 울렸다. 혼자 조직검사를 받고 수납했을 엄마 생각이 나서. 그리고 나면 나는 그 모든 걸 더 어떻게 할 생각도 못 하고 다시 곱게 정리해서 넣고, 지퍼를 닫아 원래 가방이 있던 어두운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마치 지워지지도 버려지지도 않는 기억을 봉인하듯이.


오늘 또다시 한참 만에 그 가방을 꺼냈다. 익숙하게 지퍼백을 겹겹이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약봉지와 서류들을 찬찬히 다시 본다. 이레사, 이건 엄마가 처음으로 먹었던 표적치료제. 효과는 있었는데 다른 장기에 영향이 생겨서 반년이 채 안 돼서 중단했지. 타쎄바, 이건 그다음으로 먹었던 표적치료제인데 효과가 없었는지 부작용이 너무 강했는지 투약 기간이 더 짧았었지. 처방받은 양의 절반도 못 끝내고 그득하게 남아있는 약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지만, 버리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였다. 나는 몰랐던 엄마의 고통이 항구토제와 변비약, 그리고 진통제에 남아있는 것 같아서, 이 약을 볼 때는 조금 더 엄마를 느낀다. 마치 엄마가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처럼.


그리고 이전과 달리 마약성 진통제 스티커가 붙어있는 봉지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펜타닐, 연일 마약으로 떠들썩한 요새 들어서야 알게 된 이름이다. 모르핀보다 백배 더 강력하고, 치사량이 2mg이라는 그 강력한 마약이 우리 집에 있었다니. 처방전에도 약봉지에도 무서울 정도로 경고를 도배해 놓은 게 인제야 눈에 띈다. 그간 봐도 뭔지 몰라서 그냥 못다 먹은 약이겠거니 하고 넘겼던 마약성 진통제들의 성분과 효능을  찾아보다가, 이 정도 강력한 약이 아니면 버틸 수 없었던 엄마의 마지막 몇 달이 어땠을지 새삼 더 깊이 알게 된다. 마약이 성행하는 세상이 된 게 이런 점에서는 다행인가. 처방을 받은 환자는 더 이상 없는데 이걸 계속 가지고 있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그건 불법이라며 수거하거나 폐기하러 온다면 나는 이를 악물고 우리 엄마의 기억을 보관하는 게 왜 불법이냐며 항변할 것이다. 그래도 뺏어간다면 어쩔 수는 없겠지만.


61세부터 63세까지는 처방전과 약봉지에 적힌 숫자로 나이를 세었을 엄마가 괜히 찡하다. 다음번 진료 일자가 3월 10일로 찍힌 영수증을 가방에 넣었던 엄마는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을까. 하나하나 무슨 생각으로 정리했을지 엄마의 마음을 아직은 알 수 없어서, 혹여 나중에라도 내가 알 수 있는 날이 올지 싶어 그 어느 것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오늘도 실패다. 애초에 버릴 생각도 없었지만. 다시 몇 달이 걸릴지 아니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또 다른 느낌과 다른 생각으로 나를 울게 할 것들을 오늘 다시 꼭꼭 숨겨둔다. 거기 있는 걸 알지만 구태여 들춰보지는 않는 저 깊은 구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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