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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뒷간 Apr 16. 2021

예술뒷간의 시작

장윤나



나 그리고 이 글을 같이 쓰는 우리는 (생소하겠지만) 미술품을 사고파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미술품 거래를 '경매'라는 형식을 빌려 다양한 업무를 하는데, 그중 경매의 회차마다 출품되는 작품들을 실은 책 한 권을 만들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는 출품되는 작품들에 대한 충분한 스터디가 필요하고 여러 번 원고의 퇴고를 거쳐 페이지 네이션과 디자인 작업이라는 많은 사람의 수고스러움이 담긴다. 간혹, 도록 작업을 하다 몇 날 며칠 열심히 작성한 원고가 여러 이유로 책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 예술뒷간은 나를 포함해 이러한 사정이 너무 안타까운 사람들이 모여 '빠진 글들을 어디 블로그에나 올릴까?' 하는 우스갯소리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툭 한 번 던진 농담이었지만, 꽤 괜찮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될 것만 같았고 루틴한 업무와 일상 속 새로운 동기부여로 뭐든 한번 해보자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뭘로 지을까. 너무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해 보여야하고 또, 개성 있는 네이밍을 고심했다. 아직까진 업으로 삼은 미술과 경매회사에 다니며 일어나는 이야기들, 더 나아가 각각 개별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사실, 옥션 회사라 하면 아직 많은 사람에겐 쇼핑몰회사로 인식되는 지금에서 미술품 경매에 대해 조금 더 친근하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하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다. 어떤 식으로든지 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될 때, 부끄럽고 민망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써 내려가 본다.



초년생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전공과 업무상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을 하는 글쓰기만 하다가, 일기도 안 쓰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소개할지도 고민됐다. 우선 진부한 형식의 자기소개를 해보자면, 나는 경주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에서 조소와 예술학을 전공해 미술품 경매회사에 취직한 2년 차 직장인이다. 10년 전,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고민했던 17살 때의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반드시 서울에서 좋아하는 미술을 하고 싶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역만리 미국 땅을 밟은 동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름의 야망을 품고 홍대 주변의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면서부터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고향에는 변변찮은 미술학원이 없어 매해 겨울과 여름 방학 그리고 매주 주말을 서울과 경주를 오갔고, 고시원을 마련해가며 한 가지 목표만 생각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당시에는 영화 미술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뭐가 됐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입시의 마지막 한끝은 운과 타이밍인데 다행히 잘 따라줬고 감사하게도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 4년 동안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 사실, 순수예술을 전공하면 취업과는 거리가 먼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가 아닌, 직장인이라니. 그 이유를 다시 떠올려보면 퍽 웃기다. 거창한 직업 소명으로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아니다. 학교에 다닐 당시 미대 CC였는데, 남자친구가 미술품경매라는 걸 알려줬었고 작업만 하던 내가 미술에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알려주지만 작품을 재화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이란 신성불가침한 영역을 자본의 논리로 가격을 매긴다는 것에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어쨌든 나는 그런 부정적인 분위기에 부정적이었던 그 친구의 영향으로 경매회사에서의 스페셜리스트로 꿈을 가지게 됐다. (물론 지금은 헤어졌다. ^^) 대학 막 학기가 되어, 저마다 자소서나 자격증 공부를 하는 취업 준비생들로 북적이는 학교 열람실의 틈바구니에 슬쩍 껴들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했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회사를 목표로 둔 생애 첫 이력서였고, 두 번의 면접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합격하면서 이른바 ‘초년생’이 됐다. 초년생의 사전적 의미는 ‘그 분야의 일에 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대학 졸업을 하고 시작한 일에서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삶에서도 여러모로 미숙한 초년생이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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