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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증언하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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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다. 화학자였던 레비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유격대 활동을 하다 1943년 12월 3일 체포된다. 1944년 1월 유대인인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정확히는 부나-모노비치 수용소)로 보내진다. 평범한 이름으로 보였던 그곳은 ‘절멸의 수용소’였다. 헤프틀링(포로). 74517이라는 수인번호가 왼쪽 팔뚝에 새겨지고 이름 대신 불린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187쪽)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아니고, 거의 죽음에 다가선 상태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수용소에서 레비는 살아남는다. 한번은 유대인의 노동력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건강하다는 이유로, 다음은 어쩌면 우연적인 이유로 ‘선발’되지 않으면서, 그리고 화학자이기 때문에 얼마간은 실내에서 일을 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마지막은 러시아군이 몰려오기 직전에 성홍열에 걸려 병동에 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죽지는 않았기에.


살아남은 그는 『이것이 인간인가』을 썼고,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그는 저절로 써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폭로하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서도 독일군의 만행에 대해 개인적인 비난을 가하지 않는다. 포로들 가운데 더 악독했던 이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에 대해서도 역시 개인적인 비난이 없다. 그는 복수심이라는 원초적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사람에 대한 비판에서도 그 비판이 한 개인을 향하지 않고, 인간성에 대해 사고하고 비판한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거리낌 없이 시체와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방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263족)


그는 사적인 원한보다는 인간의 조건을 망가뜨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전달하고자 했다. 눈앞의 사람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접근할 수도 없는 이들, 체제가 인간성의 조건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눈앞에 자신을 박해하는 인간에 대해 분노가 치미는 것이 어쩔 수 없었을 터인데, 레비의 인내심과 균형은 놀랍기만 하다.


사실 아무리 절절하게 그려내더라도 우리가 문장으로, 책으로 이해하는 상황은 한낱 간접적인 체험, 아니 아무 최소한의 느낌만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과 치욕, 불안, 공포를 언어로 옮기는 데 레비는 가장 정제된 단어와 문장을 씀으로써 오히려 그 상황을 극대화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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