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털린 커리코, 『돌파의 시간』
커털린 커리코.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다. 그녀의 이 자서전을 2024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직후 읽었다. 커리코가 mRNA 백신과 관련한 업적으로 수상했고, 올해는 microRNA에 관한 업적으로 주어졌으니 2년 연속 RNA에 관한 업적이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데 커털린 커리코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노벨상을 수여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나고 주로 치료용으로 개발되던 mRNA 기술을 백신 쪽으로 신속히 전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받게 되는 시점까지다. 아마 이 책을 마무리하던 시점에는 자신이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2023년이 아니더라도.
커리코는 헝가리 태생이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에서 태어나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런 덕택에 대학에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대학 시절부터 연구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길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한다(자서전에서 읽기 전부터 그녀가 미국으로 건너갈 때 딸의 인형에 비밀스럽게 돈을 숨겨간 일화는 잘 알려진 일화라 알고 있었다).
커리코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평생의 연구를 RNA에 집중했다. 책에서도 몇 차례 언급하고 있지만 RNA는 DNA와 비교해서 무척 불안정한 물질이라서 다루기가 굉장히 힘들다. 커리코는 거의 신경질적이라고까지 할 정도의 정확성과 신중을 기해서 RNA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을 익힌다. 그런데 RNA 연구에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었으니 RNA 연구는 학계에서 주류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와 함께 커리코 개인적인 스타일로 인해 그녀는 "무시받고 경시되고 강등되고 추방 위협까지 받았다."
오랜 세월동안 유펜(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연구를 하면서 연구조교수로 시작했지만 포닥(박사후연구원)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버티며 연구에 연구만을 거듭하며 쌓은 결과가 드디어는 화이자의 mRNA 백신으로 이어지고(더 정확하게는 바이온텍의 기술이라고 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고, 결국에는 노벨상을 받기에 이르게 된다. 커리코는 바로 그런 파란만장한 삶과 연구의 궤적을 열정적인 어조로 이 책에서 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커리코와 같이 연구에 헌신하는 삶에 대한 경외를 갖고, 경의를 느끼게 되는 것이 아마 저자의 목적이기도 하겠고,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한 가지만 딴지를 걸어보자면, 그녀가 연구비를 하나도 받아오지 못하면서 연구직(물론 불안정한 지위였지만)과 연구 공간을 유지하면서 실험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는 연구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상사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의아스럽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결과가 엄청나게 좋게 나왔다. 그런데 그건 결과론적인 얘기다. 누구나 자신의 연구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길 만한 근거가 자신에게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주장한다고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의 환경과 연구의 어떤 규칙 같은 것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훌륭한 결과에 대한 찬사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폭적이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참아준,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지원은 끊지 않은 연구기관과 상사가 있었기에 커리코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 커털린 커리코의 삶을 이해하고 경외하기 위해서는 자서전이 더 좋겠지만, 연구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더 좋은 책은 그레고리 주커만이 쓴 『과학은 어떻게 세상을 구했는가』가 더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