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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오후, 『틀릴 결심』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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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작가의 책을 정말 좋아한다.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대단히 미안하게도 모든 책을 구입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대출한 경우도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서 읽은 것이니 조금은 양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존의 오후 작가의 책은 특정 주제, 그것도 다른 작가들은 잘 선택하지 않는 주제를 택해서 그것에 대해 이쪽저쪽에서 바라보면서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약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성공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과학에 대해서 썼고, 나는 즐겁게 읽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좀 다르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파고든 책이 아니다. <스켑틱>에 4년간 연재한 글을 모았다(마지막 글은 따로 썼다). 그렇다고 어떤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글이 딱 오후스럽고(그게 어떤 것인지 말로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글이 어떤 지점을 향해 있다.

‘어떤 지점을 향해 있다’고 쓰고 보니, 좀 잘못 표현한 듯도 싶다. 어떤 지점을 향해 독자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런 건 없다는 게 바로 이 책에 들어와 있는 글들의 내용이고, 그런 면에서 어떤 지점을 향해 있다는 얘기다(책에서 오후 작가가 여러 차례 이런 식의 표현을 써서 나도 조금 흉내 내 봤다). 의견을 모으는 방향이 아닌, 여러 의견을 내놓도록 하는 게 여기 글들의 목적이다. 정말 무언가를 목적했다면 말이다.

논쟁적인 글들이 많다. 그건 그냥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맹탕인 글이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 이쪽도 저쪽도 비판하는, 말하자면 ‘다까기’식의 글도 아니다. 전적으로 개인적으로 얘기하자면 불편한 글도 없지 않다. 사실 모든 글이 불편한 면이 없지 않다. 다만 덜 불편한 글에선 80~90% 정도 동의하고, 가장 불편한 글에서 30~40% 정도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수치화하는 게 어느 정도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으로 그렇다. 이 정도면 아마도 나는 오후 작가의 글에 상당히 동의를 많이 하는 축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범죄자 lives matter>에서 제시한 진보/보수 감별법에서 나는 그가 제시한 세 가지에 거의 동의한다). 어쩌면 이 책의 글에 하나도 불편한 게 없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도 없을 듯하다.


이 책의 글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실은 그게 오후 작가가 쓰는 글의 매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역겹거나 파괴적인 얘기도 아니다.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고,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와 얘기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후 작가가 어떻게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얘기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게 옳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목 그대로 ‘틀릴 수도 있음’을 일단 전제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나는 그런 태도와 글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는 틀릴 수도 있으니까 감추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다만 우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다른 이의 견해를 듣는 것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부제로 “정답이 사라진 순간 우리는 대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도 맞을 수 있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정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답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정답은 ‘○, X’도 아니고, 5지선다형, 혹은 한 단어로 표현되는 객관식(이런 걸 주관식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지만)이 아니다. 정답은 짧아도 문장, 대체로는 길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걸 각자 자신의 정답으로 가지고 있어야 대화가 되지 않을까? 이것도 나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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