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꽤나 어원 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게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혹은 말의 변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디서 있는 척 하기 좋다는 이유도 ‘조금은’ 있다.
패트릭 푸트도 여기의 어원 탐구를 우리들 삶에서 필수는 아니라고,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고 고백한다. 실용적으로 쓰일 지식이 아닐뿐더러 체계적인 지식도 아니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지식들인 셈이고, 또 상당히 현학적이다. 런던에 사는 사람이 ‘London'이 Plowonidia에서 Lowonidonjon으로, 그리고 Londinium으로, 결국은 지금과 같이 London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런던에 살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런던에 관해서 더 많은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테디 베어라는 인형 이름이 테오도르 루스벨트의 인간적인 면모에서 감동받은 인형제작자가 쓰기 시작한 것이란 걸 모르더라도 그 인형을 더 잘 갖고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페트릭 푸트가 또 말하기를 삶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만 안다면 꽤나 따분할 것이고, 또 삶은 불필요한 것들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어쩌면 매우 쓸모없는 지식을 알아두는 게 대단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나도 그의 의견에 꽤 동의한다(물론 매우 정리되고 체계적인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에서).
이런 책을 술술 읽는다는 건 안 그래도 쓸모없는 지식을 더욱 쓸모없이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써먹어야 하는 지식인데, 한 달음에 읽고서야 여기 내용을 기억하는 건 기억력에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야 별로 기대할 만하지 않다. 혹 다른 이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여기에서 읽은 것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역시 별로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여기의 지식이 쓸모를 가지려면 내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을 몇 가지 정리한다.
우선 에베레스트산(Mount Everest)와 K2라는 산 이름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에베레스트라는 명칭은 아마도 그 산의 발치에라도 가본 적이 없었을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에베레스트의 높이를 측정한 담당 국장이 선임 장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라고 부르고, 티베트어로는 ‘초모랑마’라고 한다. ‘사라르마타’는 ‘하늘의 이마’를, ‘초모랑마’는 ‘세상의 어머니’를 의미한다. 어느 것이 더 나은 인물인지는 자명하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에 자리한 K2는 티지 몽고레리라는 탐험가가 자신의 규칙대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카라코람 산맥에서 두 번째로 기록했다는 의미다. 아, 얼마나 삭막한 이름인가? 이 산 역시 달리 불리는 이름이 있다. 중국에서는 ‘백의 여신’이라는 의미의 ‘차오거리’라 불리고, 파키스탄에서는 ‘높고 장엄한’이란 뜻을 가진 ‘초고리’라고 불린다. 또 ‘죽음의 산’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이 산을 오르다 죽는 사람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이 에베레스트나 K2에 비하면,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커다란 바위 에어즈락(Ayers Rock)은 제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에어즈라는 이름은 당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총독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데, 1993년에는 ‘에어즈락/울룰루’라고 바위의 본래 명칭을 병기하더니, 2002년에는 ‘울룰루/에어즈락’이 되었다.
다음은 새 이름 터키(Turkey)인데, 예상할 수 있듯이 나라 이름 터키에서 온 명칭이다. 사실은 지금은 뿔닭(guinea fowl)이라 불리는 새를 터키라 불렸다고 한다. 아프리카 원산지인 이 뿕닭이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대의 터키는 그게 뿕닭과 비슷하게 생겼고, 맛도 비슷해 스페인 사람들이 미국으로 들여오면서 그냥 그렇게 부른단다. 그런데 최근 터키라는 나라 이름이 공식적으로 튀르키예로 바뀌었다는데, 새 이름도 바꾸어야 하는 건가?
나는 카나리아 제도라는 이름이 카나리아(canary)라는 새 이름에서 나온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다. 이 섬이 카나리아 제도가 된 것은 이 제도에 개가 많아서라고 한다. canis가 바로 개를 의미한다. ‘개들의 섬’인 이 섬에 어떤 새를 키우던 사람들이 이주했고, 그래서 섬의 이름을 따서 새에게 붙이게 되었다.
도미노(domino)는 검은 사제복에서 온 이름이고, 실마리(clue)는 실뭉치를 뜻하는 독일어 clew에서 왔다. 실뭉치가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의 미로에 살던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는 과정에서 왕국의 공주가 테세우스에게 미로에서 빠져나올 방도로 실뭉치를 건넸기 때문이다. 로봇(robot)은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자신의 희곡에 처음 쓴 말이다. 노예 상태를 뜻하는 옛날 rabota에서 유래했다. 많이 알 듯이 컴퓨터(computer)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의미했다. 계산하는 사람. 프렌치 토스트(French toast)는 프랑스 음식이 아니다. 1724년 이 음식을 개발한 조지프 프렌치(Joseph French)라는 남자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러니 French's toast라야 맞지만,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이런 지식들이 한 가득이다. 이런 지식들의 쓸모가 어디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적어도 여기 적은 것들은 기억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