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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제이 May 25. 2019

임신, 내 몸의 작은 변화들

내 안에 또 다른 나

06. 임신 4주-5주



임신 초기, 내 몸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 벌써 배가 나온다.


숨겨온 똥배가 자신 있게 '까꿍' 하고 인사를 한다. 벌써  옷들이 맞 않길 시작하는 걸 보면 참 너무 일러서 어이가 없다. 평소 타이트한 옷을 셀렉하던 나의 취향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젠 복부를 조이는 옷은 숨이 차거나 답답해서 입기가 힘들다. 행여나 조이는 부분이 아기집을 짓는데 방해가 될까 봐 본능적으로 꺼려하는 건지도 모른다.


당분간 헐렁한 원피스와 베프 먹을 각. 자궁이 커지는 단계인데 배가  덩달아 커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 걸로. 예전에 친구가 임신 5주째인데 배가 나왔다고 배를 쓰담 쓰담하는 모습에 오버라고 친구들과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 친구는 농담이 아니었 것이다.


올챙이 배 coming soon (출처: 네이버)


2. 소변이 자주 마렵다.


내 방광을 시도 때도 없이 누르는 누군가가 내 뱃속에 살고 있다. 제발 그만 좀 눌러. 화장실 들락날락하다가 만보 찍게 생겼다. 이렇게라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를 억지로  운동시키니 넌 이미 효자 인정.



3. 가슴이 고 아프다.


아파도 좋으니, 가슴 사이즈는 늘 지금처럼만 같아라.



4. 두통이 온다.


아침, 점심으로 하루 두 잔씩 꼭 커피를 마시던 카페인 중독자인 내가 커피를 끊으면서 오는 'caffein withdrawal headach'인지, 그냥 임신 초기 증상인지 모르겠으나, 아침이나 오후쯤 특히 공복  머리가 아프다. 하루 한잔 정도의 커피는 괜찮다고들 하나, 제대로 관련해서 임상시험이 진행된 적이 없고 임신  체내에 카페인 농도가 높을수록 아기에게 틱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커피를 멀리하려고 무척 노력 중이다. 커피에서 디카페인 루이보스 티로 환승 중. 쉽지 않다.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두통, 너무 너무 힘들어요 (출처: 네이버)


5. 입덧이 아직 없다.


친한 친구는 임신을 확인한 4주째부터 막달까지도 입덧, 토덧, 침덧 별별 메슥거림으로 힘들어하던 걸 지켜봤는데 난 아무런 증상이 없다. 초기엔 이런 입덧 증상으로 '아.. 아기가 잘 크고 있구나'라는 걸 안다고 하는데, 난 아직 입덧이 없어서 맘껏 먹을 수 있는 건 좋은데 한편으로는 잘 유지가 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한 번씩 가슴 통증이 있는지 눌러보기도 하고, 너무 늦게 퇴근한 날은 별일 없이 여전히 두줄이 맞는지 괜히 임테기를 해보곤 한다. 입덧이 없는 건 복이라고 는데, 아직 너무 일러서 단언하긴 힘들지만, 이대로 쭉 입덧 없이 9개월 가즈아.



6. 먹덧이 생겼다.


공복일 때 메스꺼움이 느껴진다.
 배가 부른 느낌이 들면 메스꺼움이 사라진다.
하지만 소화가 되면 다시 또 메스꺼운 느낌이 든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공복인 상태에 오래 있으면 헛구역질 증상이 생긴다.

잠이 막 깬 공복 아침이 가장 심하고 평소엔 멀미 나는 차를 타고 있는 기분이거나,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숙취 같은 속 쓰린 울렁거림이 생겼다. 왜 입덧이 영어로 'morning sickness'인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아침이 가장 괴로우니까. 공복일 때 증상이 심해지고 먹으면 조금 나아지는 걸로 봐서 난 입덧보다는 먹덧에 가까운 것 같다. 진짜 먹덧이 맞다면 예정된 먹부림에 살이 엄청 찔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온다. 그래도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했으니 못 먹는 것보다는 준히 먹는 것이 아주 조금은 행복한 일이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7. 피곤하고, 고, 나른하다.


회사에서 졸지 않고 정신 줄을 붙잡고 있는 내가 대할 정도로 집에 들어서'레드썬' 하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기절을 한다. 진짜 글자 그대로 기. 절. 침대나 소파에 머리를 대면 3초 안에 잠이 든다. 불면증이여, 안녕!


레드썬 (출처: 네이버)


8. 쉽게 서럽고, 상처 받는다.


호르몬의 장난인가.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말들에 쉽게 상처 받고 눈물이 난다. 임신 사실을 알고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해외 출장을 갈 수 없단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 해 힘든 출장을 가야 한다는 사실에 이미 마음이 너무 무겁고, 한편으로 미안하고, 장이 잦은 이 회사를 이대로 계속 다녀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나에게  사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말들은 서러움이 목 끝까지 차오르게 만든다. 왜 수많은 여성 직장인들이 경력단절을 무릅쓰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직을 알아봐야 하나, 출장 없는 부서로 전배를 가야 하나' 일주일에도 수차례 연락 오는 헤드헌터들에게 이젠 좀 더 살갑게 굴어야겠다는 생각 든다. '쉬면서 한국 약사 시험 준비하고 틈틈이 글을 쓸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한껏 헝클어 놓는다. 그렇다. 평소였다면 아무렇게 않게 넘겼을 말들이 상처가 된다. 제 시작인데 남은 시기를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이 앞선다.


 임신이 내게 콤플렉스가 되게 내버려 두지 말자. 내일은 더 당당해지자.


지난달 같은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팀원이 나에게 잠깐 할 얘기가 있다 면담 신청했다. 결혼 준비 중인데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됐다며,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임신을 해서 출장을 못 가는데 어떡하냐며 얼굴에 미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전문님, 좋은 일 앞두고 있는데 그런 걱정들로 슬퍼하지 말아요.  전문님은 행복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에요. 결혼에 임신까지 즐거운 일들만 한가득이네요! 출장 걱정 같은 것 하지 말고 임신 중에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몸 관리만 신경 써요. 축하해요~ 결혼 준비 잘하시고요."


내가 프로젝트 리더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친구가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보듬어 주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뱉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퇴사를 고민하게 할 정도의 파급력이 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지금 내 마음이 그러니까.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미래에 또 다른 나의 프로젝트 팀원이 비슷한 고민 상담을 할 땐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눈빛으로 다독여 주겠노라. 내가 겪어 내는 마음의 상처들이 나를 한 뼘 더 성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누구에게나 배울 것은 있는 법니까.


이번 생 처음 겪어보는 '임신'이기에 마냥 축복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난 참 많이 순진했다.

몸의 변화도 회사에서의 상황들도, 현실은 냉정하다.

그래도 당당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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