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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제이 May 24. 2019

아기집으로 간주할 법한

1주일 후에 다시 만납시다

05. 초음파



지난 주말 임신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하고, 다음 토요일에 병원을 가보자며 산부인과 진료를 예약했다.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릴까 걱정는데 맡은 프로젝트가 한참 바쁜 시기라 한주가 너무 쏜살같이 가 버렸다. '이러다가 과로로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잠시 밤 10시가 넘게까지 야근을 하며 내 안에 나 외에 젤리곰이 함께 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내고 있었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드는 나를 남편은 무척 안쓰러워했다.


토요일인데 아침 일찍부터 잠이 깼다. 주말엔 늦잠을 자는 것이 주말의 묘미라고 큰소리치던 내가 마치 어릴 적 소풍날 아침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배고프다며 징징. 잠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때마침 초인종이 울려 남편은 한걸음에 벌떡 일어다. 허겁지겁 달려 나간 남편이  장미꽃 한아름을 안고 들어왔다. 남편의 누나가 아기 소식을 듣고 축하 바구니를 보내면서도 너무 초기라 조심스러우셨는지 생일 선물이라고 둘러대신다.

언니의 .



남편과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5 채 되지 않아 아기집을 못 볼 수도 있고, 피검사만 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는 출산 선배들의 조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 한 주동안 나를 너무 혹사해서 더 이상 임신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동시에 찾아왔다.


"너무 회사일 때문에 너를 희생하지 마. 회사는 너 하나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지만, 혹시 과도한 업무로 나쁜 일이 생기게 되면 네 인생에는 정말 큰 상처가 되는 거야! 그런 일이 생기면 진짜 퇴사하고 싶을 수 있어. 그땐 이 회사를 계속 다니기 힘들 정도로 회사가 싫어질 거야. 그러니 몸 먼저 챙기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일찍 일찍 퇴근하고, 얼른 병원부터 가봐."  


나와 같은 날 입사 그룹장님이 캔틴으로 나를 따로 불러 임신 출산 선배의 조언을 늘어놨다. 까칠한 듯하면서도 상대를 따뜻하게 챙길 줄 아는 츤데레 언니. 깨알 같은 엄마 잔소리와 충고를 섞어가며 첫 아이인데 어떻게 이렇게 느긋할 수 있냐며, 당신은 첫 임신 때 수도 없이 병원을 오가며 불안 해 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회사에 진심으로 내 입장에서 마음 써주는 사람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산부인과에는 D라인을 뽐내는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구석 한쪽에 자리를 잡고 내 이름이 불리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남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너무 이른 시기라 아기집이 안 보이네요"라고 말하려는 찰나,


아기집인 것으로 간주되는 작은 것이 보이네요!


아직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다음 주쯤 되면 많이 클 것 같다며 축하한다고 말씀셨다. 남편과 나는 동그란 점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봤다. '동그란 점이 아기집인가?' 신기하다. 젤리곰이 기특하게도 힘든 시기를 잘 버텨주고 있었다. 오묘하고 뭉클한 복합적인 감정들이 오고 간다. 내심 또렷하고 큰 아기집을 못 본 것이 아웠는지 초음파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4주 차에 병원을 간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 해 자궁 외 임신일 수도 있고, 유산 중일 수도 있고, 상상 임신일 수도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나쁜 경우들을 의사 선생님이 미리 얘기해 주신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내게 직접 이런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닌데 인터넷에 떠도는 임신 선배들의 생생한 블로그 글을 읽으며 난 혼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걱정을 사서 하는 게 이런 것.


"언니, 아기를 낳아보니 쓸데없는 걱정들이 생겨. 아기가 거실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데도 애가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걱정을 한다니까? 웃기지? 언니도 경험하게 될 거야~"


얼마 전에 아기를 낳은 친한 동생이 이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내 뱃속에 젤리곰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병이 도지게 되는지 한 번에 이해가 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 이성적으로 판단이 불가능여 모든 것이 불안한 상태.




평일에 서로 바빠 생일 식사  함께하지 못했던 우리는 생일 축하 장소로 송도 '오크우드' 호텔을 선택했다. 36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난 우아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애피타이저 초밥 한 접시를 시작으로, 메인으로 나온 안심 스테이크를 클리어하고, 뷔페 코너에 준비된 크랩을 능숙 능란한 손놀림으로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다. 내가 봐도 이건 평소 내가 아니다. 내 안에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있다. 나의 역대급 먹부림에 남편은 조용히 내  빈 접시를 바라보며 뿌듯해한다.


한주 동안 잘 먹고 잘 자고 네가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할. 우리 함께 이 시기를 잘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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