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주 차부터 일찍 찾아온 입덧은 내 마음 풍경의 아름다움을 모두 빼앗아 갔다. 아기가 생겼다는 즐거움도 잠시 일상이 무기력하고 힘겹게만 느껴졌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몸이 힘들긴 해도 단 한 번도 회사를 가기 싫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가 회사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무서워 회사 출근이 두려워졌고, 남편과 손잡고 걷는 기분 좋은 산책길 조차 메슥거리는 속 때문에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무채색의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8주 차에 힘차게 뛰는 아기의 심장 소리에 엄마랍시고 힘을 얻었고, 해준 것도 없는데 임신 초기 이벤트 한번 없이 건강하게 자라 주는 아기에게 뭉클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임신 12주 차에는 1차 기형아 검사 때문에 또 한 번 마음 졸이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12주 1차, 16주 2차 기형 검사로는 90%의 기형 확률밖에 검진이 안된다기에 60만 원 바우처를 한꺼번에 털어서 확진에 가까운 99%까지 검사 가능한 니프티 검사를 하기로 통 큰 결정을 했다. 아기의 건강에는 돈 아끼지 말자던 우리 부부는 '검사 결과 정상입니다.'라는 문자에 큰 안도감으로 가슴 쓸어내리면서도 부모의 마음을 이용한 병원의 상술에 괜한 검사로 60만 원을 버린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 또한 잠시 스쳐갔다.
12주 차 목 투명대 검사 0.94mm
12주 차 목 투명대 검사에 아기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검사가 힘들다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기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빨리 검사해주세요' 하는 자세로 얌전히 누워있어 의사 선생님의 칭찬과 함께목 투명대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벌써 엄마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많은 아기인 것 같아 과연 내가 이 과분한 아기에게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14주가 되면서 입덧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숙취 상태로 작은 동동배를 타는 것 마냥 요동치던 속이 이젠 버스 멀미 정도로 약해졌다. 내 마음의 풍경에 알록달록 예쁜 불빛들이 켜지고 있다. 먹고 싶은 것도 생기기 시작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바빴던 내가 그동안 너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는지 '태교'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꽃씨를 닮은 아가에게' 컬러링 동화책
하나하나 빈 공간에 색을 입히는 순간만큼은 오롯이 아기에게 이 동화책을 완성 해 읽어주는 모습만을 떠올렸다. 행여나선 밖으로 색연필이 빗겨 나가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색칠을 한다. 어떤 색을 고를지도 한참을 고민하고, 그 결정의 순간에도 아기가 뛰어난 색감을 가지고 태어나길 조심스레 기대해보기도 한다.
태어나면 아기가 눈 맞출 흑백 모빌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만들기 시작하고, 이 모빌이 완성되면 다음엔 뭘 만들지 고르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아빠는 아기가 가지고 놀 소프트 볼을 만들며 박음질 사이로 솜뭉치가 삐져나와도, 앞뒤 천조각이 맞지 않아도, 바늘에 찔려 소리를 질러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렇게 우린 소중한 아기에게 줄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주로 다가온 16주 검진에 성별을 알게 되면 아기에게 애착 인형을 직접 만들어 주겠다는 아빠의 포부가 크다. 소프트 볼을 만들면서 3번을 다시 뜯고 바느질하며 사투를 벌이던 아빠가더 큰 정성을 쏟을애착 인형을 아기가 얼마나 좋아할지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우린 이렇게 소박하지만 그 누구보다 큰 사랑을 담아 너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 딸일지, 아들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넌 건강하게만 우리 품으로 와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