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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제이 Jun 01. 2019

저는 항복하겠습니다

입덧, 호르몬의 반격

08. 임신 6주-7



"2~3일 후 아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입덧 증상이 생길 수 있어요. 어머니가 입덧하셨대요?"
"아뇨, 어머니는 입덧 없으셨대요."
"그럼 없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하시는 분들은 유전이랑 상관없이 하니까 경과를 잘 지켜보시고 힘들면 병원에 오세요."


기가 막히게 병원 다녀온 다음날부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심리적인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금방 입덧을 경험하니 나 자신도 몹시 당황스럽다. 르면 임신 4주부터 시작한다는 입덧을 난 5처음 경험하기 시작했다.


입덧은 숙취 상태로 배를 타는 것


전날 술을 잔뜩 먹고 다음 날 숙면을 취하지 한 상태로 깼을 때의 두통과 속 쓰림, 토하고 싶은 메슥거림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런 상태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작은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입덧을 제대로 표현이 가능할까?


술 마다음날 숙취가 싫어 웬만하면 과음을 하지 않는 내가 임신을 한 이후로 술 한 방울 입에 대지도 않고 만성 숙취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지난주까지만 해도 덧이 없다며 자신만만 해 하던 난 어디로 가고 힘없이 축 늘어진 채로 '제발, 울렁이는 건 참을 테니 토하지는 말자!'며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구역질을 정신력으로 버티려는 나.


Hangover (출처: Google Image)


새벽 2-3시쯤이면 저녁으로 먹었던 음식이 완벽히 소화가 되었는지 격한 공복의 속 쓰림과 메슥거림으로 잠이 깬다.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를 한 움큼 꺼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우걱우걱 먹고 있다. 살겠다고 먹는 생존 토마토.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지 않으면 울렁거림에 괴로워 잠들지 못 무언가를 위장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겹지만 진짜 울음이 터져버리면 그 모습이 더 서러울 것 같아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라며 울음을 삼켜낸다. 그렇게 빈 속을 달래고 다시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든다.




입덧을 누가 영어로 'Morning Sickness'라 이름 지었는지 그 위엄은 진정 아침에 눈떴을 때 발휘한다. 다시 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꿈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아본다. 하지만 직장인인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출근 압박감에 꼬꼬물 이불속을 억지로 빠져나온다.


Morning Sickness (출처: Google Image)


양치를 하던 내가 구역질을 시작한다. '아, 첫 구토의 시작인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양치덧'인가.' 갑자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고통의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지 두려움이 몰려온다. 덧의 원인, 입덧 완화 음식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너무 다르겠지만 내 입덧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찾을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입덧은 임신 중에 생기는 구역 및 구토 증상으로 임신 시 체내에 호르몬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사람 융모 생식심 자극 호르몬,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렙틴, 태반 성장호르몬, 프로락틴, 티록신 등 여러 호르몬이 고농도로 빠르게 증가하면서 입덧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런 내분비계 (호르몬) 관련 요인 외에도 면역학적 원인, 헬리코박터 감염, 위장 관계요인, 정신/신경학적 원인 등 이들의 복잡한 상호 작용도 입덧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많은 임신부들이 겪어 내고 있는 입덧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모두 이렇게 힘겹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입덧에 도움이 된다는 생강차를 마셔봐도, 방울토마토를 먹어봐도, 크래커를 먹어도, 그 순간 잠시 뿐이다. 그리고 이젠 입덧 때문에 먹는 음식이란 학습 효과 때문에 이들조차 손에 대는 것이 반갑지가 않다.


'양치덧'은 치약을 바꾸면 괜찮아진다는 말에 '레몬 진저 향' 치약을 구매했다. 레몬 진저 티가 입덧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고 레몬 진저 향 치약이 동일한 효과가 있을 것라는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치약을 듬뿍 짜 자신 있게 양치하던 나에게 양치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레몬 진저 향 치약은 나의 입덧에는 그다지 움이 되질 않는 것으로 결론.


구역질 너무  싫어요 (출처: Google Image)


난 임신을 해도 야근을 할 생각에 '임신부 등록'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단축 근무는 꿈도 꾸지 않는), 출산 휴가 3개월 후 육아 휴직 없이 바로 회사 복귀를 계획하고 있었던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다. 휴가 기간이 길어질수록 업무 적응도와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내가 입덧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변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업무를 해도 집중이 되질 않고 너무 아무렇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를 쓸수록 몸상태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회사는 가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임신을 반기지도, 배려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난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내가 정을 많이 줄 수록 상대의 무관심이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오듯이 그 상처가 두려워 나도 더 이상 대에게 관심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입덧이 너무 심하다 싶어 2주가 지나지 않았데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의 예언처럼 내 입덧의 시작과 함께 아기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준 아기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기쁨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사라져 버리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아기집에 동그란 점이 생기더니 이젠 제법 젤리곰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0.47 cm 크기의 아기는 손가락 한마디도 채 되질 않는다.


처음 신장소리 듣던 날 (6주 1일차)


"엄마는 힘들어도,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입덧은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예후가 좋은 징조이니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너무 스트레스받거나 무리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말로 수척해진 나를 위로하셨다. 남편과 진료실을 걸어 나오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어머니는 당신의 고통과  바꿔가며 뱃속에 나를 품으시고, 내가 커가는 동안에도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직 한없이 나약한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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