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조용히 좀 통화 합시다

탈선에 관하여

by 이용현
탈선. 지켜야 할 선을 넘다.

늦은 저녁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 사람들이 하나 둘 선잠에서 깼다. 맨 뒷자리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남자때문이었다.


남자는 사람들의 짜증 섞인 투에도 아랑곳 앉고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전화는 진동으로, 껌 씹을 때는 작은 소리로, 통화는 작게, 버스를 타곤 할 때 봤던 공중도덕의 슬로건들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 이 버스 안에는 휴대폰의 소리 모드를 무음이나 진동으로 바꾸는 걸 귀찮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전화가 걸려왔음에도 수신거부를 하거나 작은 목소리로 이따가 전화할게, 라며 옆사람을 신경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공공장소에서의 약속을 지키는 건, 자신의 욕망을 꺼트리면서 잠시 자제하는 건, 나 하나의 행동이 함께 머물러 있는 타인에게 자칫 피해가 갈 수 있어서다.


나 하나의 소유가 아닌 다같이 돈을 지불하고 함께 쓰는 공공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심성이 착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예의.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안는 쪽에 가까워서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간의 최소한의 매너인 것이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는 내 의지를 불태워 어떤 행동을 일삼아도 좋지만, 모두가 함께 하는 곳에서 지켜야 할 선을 지나치게 넘어버리면 반드시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다.


눈에 보이진 않을지라도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화와 분노가 쌓여 어디론가 향한다면 그곳의 종착점은 언젠가 나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거나 내가 될 확률이 높다.


마흔 명이 탄 버스 안에서 모두가 지켜야 할 선을 최소한으로 지키고 있는 공간 안에서 남자의 행동이 작은 탈선이었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 공공의 세금을 내고 편법으로 부당하게 사기치지 않고 살아가는 국민을 배신한 그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탈선을 저지른 것이다.


2년 8개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 100m까지 가기 위해 걸린 시간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 길을 오지 못하는 선이라 규정짓고 감히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가만히 있어라는 선장처럼 발길을 떼지 못하고 제자리에만 있던 기간 2년 8개월.


법원의 허용으로 행진을 할 수 있게 되자 100m앞에 다다른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자리에서 오열했다고 한다.

법이라 우기는 틀 속에서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지키고 지키다 끝끝내 한 발을 뗄 수 있었으므로.


모두가 지켜야 할 넘지 말아야 할 선.

그 선의 경계를 무너트린 건 과연 누구였던가.

최소한의 양심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선을 지키고 온 사람들과는 달리, 권력을 앞세위 수많은 선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탈선을 일삼은 이들은 누구였던가.


여전히 큰 목소리로 통화를 오래 하던 남자는 용기 있는 한 아저씨의 발언으로 목소리를 나지막히 줄였다.

"거 조용히 좀 통화합시다!."


탈선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침묵으로 인내하던 버스 안의 질서는 곧 회복 되었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서울을 통과하고 있었다.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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