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관리법
요즘 크로스핏 운동에 푹 빠진 나.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복을 입었다. 운 좋게도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크로스핏 박스(크로스핏 운동하는 곳을 박스라고 부른다)가 있어 집에서 6시 15분쯤 나오면 딱 맞다.
차 1대로 살고 있는 우리 가족. 새벽엔 내가, 밤엔 남편이 크로스핏 박스에 가기 때문에 차가 어디에 주차되었는지 모른다. (보통 남편은 밤 11시가 넘어 집에 오는데 그 시간은 내가 이미 깊은 잠에 빠짐 시각이다)
오늘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차 키를 눌러가며 주차된 차를 찾았다. 현재 우리 차는 결함이 떠서 수리를 맡긴 상태로, 약 일주일째 시아버님 차를 빌려 타고 있다.
차를 발견했는데 이게 웬 일. SUV 중에서도 큰 편인 아버님 차 앞으로 두대의 흰색 차가 나란히 이면주차되어 있었다.
‘저게 빠져나갈까?’
순간 머릿속에 1초 정도 이런 생각이 스쳤지만 일단 운동 시작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차에 올라탔다. 직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최대한 각을 오른쪽으로 만들어보려 하는데 우직- 하는 느낌과 함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었다.
‘잠깐만요???‘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황급히 차에 내려 오른쪽에 주차된 차를 보니 동그란 원에 시옷 (ㅅ) 모양이 새겨진 벤츠 로고가 나를 째려보는 듯했다. 뜨거운 연애에 빠진 신생 커플처럼 벤츠와 시아버지 차는 프렌치키스 중이었다. 오 마이갓!!
우선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조작(?)은 더 이상 없다고 판단했다. 차를 다시 뒤로 후진하다가는 벤츠와 딥키스를 할 것 같았다. 다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이와 꿀잠에 빠진 남편은 응답이 없었다.
비상깜빡이를 켜놓은 채 후다닥 12층 집으로 올라갔다. 새벽시간인데도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늦게 온다. 집에 들어가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아우 진짜.. 내가 차 빼다가 옆에 차 긁었어. 빨리 가보자!!!”
내 말을 듣자 남편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다. 남편이 차를 어렵게(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음) 뺐고 차주의 번호가 안 적혀 있어 관리실에 가서 물어보겠다고 했다.
집에 올라가니 그새 잠에서 깬 아들이 아이패드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눈가는 조금 운 듯 촉촉했다.
“깼어? 엄마 아빠 없어서 놀랐지? 미안해”
“응 무서웠어. 그래서 만화 봤어”
울지 않고 만화를 보며 엄마 아빠를 기다려준 아이가 기특해 고마워하는 찰나 남편의 전화가 왔다. 상대방 차량이 조회가 안된다고, 메모를 써서 가지고 내려오라고 했다.
- 안녕하세요, 오늘 새벽 6:20분경에 차를 빼다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번호로 연락 주세요.
이게 아니야…
좀 더 겸손해야 돼..
종이를 다시 가져왔다.
- 안녕하세요, 오늘 새벽 6:20분경에 차를 빼다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번호가 없어 연락처 남기니 아래 번호로 연락 주세요.
그렇게 차량에 메시지를 꽂아놓고 집에 오니 마음이 너무 속상했다. 내 차도 아니고, 남편 차도 아니고, 아빠 차도 아닌 시아버지 차로, 모닝도 아니고, 마티즈도 아니고, 아반떼도 아닌 벤츠를 긁었으니…….
남편은 나에게 큰 차는 조심해서 운전해야 된다며 ‘앞으로 운전하지 마 ‘ 하며 약간은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울적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어찌나 서운한지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에게
“지금 제일 힘든 건 나야!”
라고 외치고는 옷장 문을 닫았다. 운동은 못했고 출근은 해야 되고 마음은 속상하고. 오늘 아침부터 왜 이럴까 싶었다. 훌쩍훌쩍 눈물도 나왔다. 그렇게 후다닥 집을 나와 회사로 향하면서 나는 오늘 멘탈 관리 단단히 해야겠구나 직감했다.
우선 남은 내 하루에서 더 이상 차 생각은 하지 말아 보기로 다짐했다. 최근에 휴대폰에 저장해 둔 글귀를 폰 배경화면으로 세팅했다.
걱정하는 데 내 에너지 쓰는 것을 멈추기
대신 믿고 창조하고 사랑하고 성장하고 빛나고 분명히 나타내고 치유하는데 내 에너지 사용하기
지금 내 상황에 꼭 맞는 말이었다. 비록 돈은 깨지겠고 시아버지 볼 낯은 없겠으나 지금 내 몸이 건강하다는 것. 큰 사고가 나서 다친 게 아니라는 것에 집중했다.
큰 차 사고가 나서 아프게 된 것이 아니라 감사해.
백만 원 이상 깨지더라도 난 백만원보다 훨씬 더 소중해.
죽는 날에 오늘의 접촉사고 따위는 생각도 안 날 거야.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내 시간을 좋은 에너지로 가득 채울 거야.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아침의 접촉 사고를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폰을 들 때마다 메시지를 보며 내 에너지가 걱정하는 데 쓰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고 너무 바쁜 하루 일정이라 일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출근하는 버스에서 쓰기 시작한 이 글을 퇴근하는 버스에서 마무리한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드 있을 수 있다고, 그래도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말자고, 글로 남겨 기억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차주는 보험 처리하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그 사람 마음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이것 또한 받아들여야지 싶다.
‘괜찮아 난 안 다쳤고 차는 고치면 되고 아버님껜 사과하면 되고 돈은 열심히 벌자고! 이번주 고생했으니 두 발 뻗고 푹 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