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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May 03. 2023

흰머리와 가르마

Going gray! Going great!

오늘은 유독 머리카락이 굵고 숱도 많아 늘 포화상태였던 내 머리카락에 대해, 특히 언제부터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흰머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나는 숱이 많아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날이 많았다. 20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6대 4나 7대 3 정도의 가르마를 하고 다녔다. 가르마를 타면 내 동그란 얼굴이 좀 갸름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6.5대 3.5 정도 되는 가르마 타기를 좋아했다.


사랑하는 가르마를 포기한 때는 30대 중반쯤부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르마길에 자꾸만 새하얀 흰머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한두 가닥씩 새치가 있었던 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혼 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남편 읽고 있니?)


문제는 이 흰머리들이 특정 영역에 집중적으로 난다는 점이었다. 특히 내 경우에는 양쪽 귀를 기준으로 선을 그었을 때 귀 아래 부분이 눈 내린 밭이었다. 그래도 머리 아랫부분이라 잘 티는 안나 다행이다 싶었다.


그다음으로 잘 나는 부위가 있었으니 애석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가르마 길이였다. '아니 얘들은 왜 여기 올라오는 거야' 속상한 듯 혼잣말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염색을 해도 일주일이면 희끗희끗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한다. "저 여기 있어요~" 참 밉상이다.


결국 나는 이리저리 머리 가르마를 바꿔보다가 내 동그란 얼굴을 더욱 완벽한 동그라미로 만들어주는 5:5 가르마에 정착했다. 희한하게도 5:5 지점의 선에는 흰머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껏 5:5 가르마를 5년 가까이한 것 같다. 아주 가끔씩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며 그리운 6:4 지점으로 넘어가 보지만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 흰머리들과 인사를 하느니 차라리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겠어. 하는 마음으로 5:5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주, 회사에서 촬영이 있어 사진을 찍게 됐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 동료(지금은 친구)가 지금 회사로 이직해서 같이 다니고 있다. 촬영 당일에 그 친구와 만났는데, 둘이서 좋다고 셀카를 몇 장 찍었더랬다. 친구가 사진을 공유해 줬는데 문득 친구와 처음 만난 회사에서 찍었던 사진이 생각났다. 30살이라며 손으로 3과 0을 표시하고 찍었던 게 생각나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 뒤져서 사진을 찾아냈다.

30살땐 7:3 가르마였는데(오른쪽이 나)

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친구와 내가 다시 새로운 직장에서 만났다니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싶으면서도 지난 30살의 사진을 보니 왜 이렇게 풋풋한지. 그때만 해도 우리가 입사한 직원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아 노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참 어리고 생기발랄했다.


그런데 9년 전 사진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는 또 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내 머리의 가르마였다. 7:3 정도 되는 가르마를 하고 약간 밝은 염색을 하고 머리를 묶은 모습이었다. 그때만 해도 흰머리는 신경 쓰지 않을 때였으니, 흐르는 세월 막을 길이 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문득, 내가 좋아했던 7:3 가르마를 왜 지금은 못할까고민해 봤다. 이유는 흰머리가 계속 더 많아지고 있는데 그걸 ‘내가! 내 눈으로 보기 싫어서“, 그리고 남에게 내 흰머리를 보이기 싫어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흔이 다가오니 남이 내 흰머리를 보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배짱이 커지고 있다. 결국 내가 내 눈으로 흰머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문제만 해결한다면 예전처럼 다시 가르마를 바꿔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 가지 생각에 꽂히면 바로 실천하는 나는 곧장 빗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 다시 예전의 가르마를 해보니, 이제는 완연하게 흰 줄이 보일 정도로 흰머리가 많아졌다. 하지만 흰머리만 바라보지 않고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니 뭐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내 마음이 내 눈을 지배해서 그런지 얼굴도 좀 갸름해 보이는 것 같았다. 흰머리가 좀 보이더라도 뭐 어때.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대범한 생각이 올라왔다


가르마에 대한 나의 피해의식(흰머리 너 때문이야)은 흰머리에 대한 내 관점과 인식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흰머리가 뭐 어때서. 나이 들어가는 게 뭐 어때서. 당연한 거 아니야?)


우연히 책을 읽다가 염색하기를 멈추고 #goinggrey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장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goinggrey를 검색했다. 피드는 염색머리에서 흰머리로 갈아타는 멋진 언니들의 눈부신 은빛 머리카락으로 도배됐다.


인스타그램 고잉그레이 검색 캡쳐


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흰머리를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에 따라서, 나도 언젠가는 염색을 멈추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늙어가는 게 뭐 어때서? 흰머리가 뭐 어때서? 내 머리 색깔과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밝고 에너지 넘치는데?라는 배짱과 자신감. 곧 다가올 40대에는 그런 배짱과 자신감으로 무장해야겠다. (가르마도 그날 그날 내 마음대로 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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