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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Mar 08. 2024

아빠의 지하철, 나의 지하철

무릎이 아프신 아빠가 서울을 오셨어요

내년이면 70세가 되시는 아빠. 요즘 무리를 하셨는지 한동안 괜찮던 무릎이 너무 아프다고 하셨다. 부산에서 여기저기 병원도 다녀보고 침도 맞아보고 하셨는데, 걷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안 좋은 상태까지 이르렀다. 때마침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의사가 어르신들께 주사 한 대를 놓으면 잘 걷는 신기한 장면이 나왔는데, 엄마가 그걸 보시고는 서울의 **병원에 예약을 했다고 하셨다.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병원이었지만 나도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히 잘 알 수 없었다. 예약이 한 참 밀려있는데, 한 사람이 취소를 하면서 자리가 났다고 어렵게 예약한 거라고 하시니, 일단 서울로 오시도록 차편을 끊어 드렸다.


오후 6시 45분, 부모님이 내리실 플랫폼의 16호차 앞에서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 아빠를 만났다. 아빠의 손에는 부모님이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니시는 빨간 기내용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내가 짐을 들어드리려고 하니 아빠가 "이게 내 지팡이"라며 손에서 캐리어를 놓지 않으셨다.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아빠는 한 걸음 한 걸음, 캐리어에 의지해 발을 옮기셨다. 지난 설에 뵀을 때보다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서울역에 도착한 기차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와 아빠, 나 사이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뚜벅뚜벅, 평소와는 다른 속도로 천천히 아빠의 속도에 맞춰 걷기 위해 노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아빠는 캐리어에서 뽑아낸 긴 손잡이를 의지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평소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는 터라, 이동경로는 주로 지하철로 찾는 편이다. 붐비더라도 시간을 지켜 도착하는 지하철을 좋아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는 길은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고 쭉 내려와서 사당에서 1번만 갈아타면 되는 쉬운 여정에 속했다. 30분 안에 집에 도착하겠다 싶었다. 택시로도 검색은 해봤지만 퇴근길 시간이라 차가 막혀 50분 이상이 소요된다고 나왔다. 


별생각 없이 지하철 타고 가자고 했지만, 이건 온전히 내 기준에서의 '쉬운 여정'에 불과했다. 서울역을 빠져나와 지하철 4호선을 타기 위해 걸어가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서울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호선 타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계단이 수차례나 나왔다. 평소 계단이 나오면 그냥 걸어가면 되었던 지하철이었지만, 무릎이 불편하신 아빠와 함께 타는 지하철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게 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아빠는 한 손으로는 중앙에 설치된 은색 안전바를, 나머지 한 손으로는 캐리어 손잡이를 지지해야 했다. 계단 몇 개를 앞두고 우리가 타야 하는 지하철이 들어왔다. 평소의 나였다면 후다닥 뛰어가 몸을 실었겠지만, 아빠는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또 어렵게 올라가셔야 했다.


지하철은 갈아타는 곳도 많고 지하/지상 등 층도 달라 계단이 참 많은데 엘리베이터가 곳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평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아빠를 통해 지하철이 다리가 아픈 분들께는 너무나 불편한 이동수단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문득 며칠 전 출근길에 지하철에 올랐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많은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딱 봐도 한 번에 다 타기 힘들 만큼 많은 어르신들이 계단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장면이. 


결국 우리는 어렵게 환승을 하고 평소보다 10여 분 더 늦게 역에 도착했다. 아빠가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지하철 탑승의 어려움, 아픈 분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시스템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좀 막히더라도 거동이 불편할 때에는 택시를 꼭 타야겠다는 생각까지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이제는 출근길 지하철을 탈 때 그 역의 엘리베이터를 볼 때마다 아빠가 생각날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아도 아빠가 떠오를 것이다. 거동이 불편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간접적으로나마 그 힘듦을 생각해 볼 것이다. 어서 아빠가 잘 치료하고 나으시길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하루다.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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