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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심리사 윤제학 Oct 22. 2022

'힘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다.

눈물 참기의 기술

힘내!

 충분히 그 사람을 위한 말이란 건 알지만, 

그건 단 두 글자의 말로 나의 진짜 눈물과 울분을 다시 거두어 침잠하게 만드는 주문이다. 

그 말 자체를 악의가 있거나 형식적인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은 힘내란 말을 하기 전, 건네 줄 준비된 위로가 없었고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그다지 잘 몰랐을 뿐이다. 


진정으로 위로받거나, 지지받는 것이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안쓰러운 마음만 있을 뿐, 

위로하려 했으나, 위로되지 않는 무의미한 언어만 늘어놓았다. 

상대방을 위로하려 했으나, 전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고민 후에 겨우 내뱉은 말이 고작 '힘내'라는 말이었을 뿐이었으리라. 

이것은 우리의 슬픈 개인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나 정말 힘들었어.",
"나도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정말 모르겠어.",
"나 너무 슬퍼." 


이 모든 말은 '힘내, 다 잘 될 거야' 같은 간편한 말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숨죽여야 했던가. 


예전부터 감정과 기분이란 건, 히스테릭한 개인주의와 변덕스러움, 

점잖지 못함과 같은 부정적인 색깔로 점철되어 당연히 억압되어야 할 것으로 치부당하진 않았는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감정표현 불능증이 되어 버렸다. 

누구의 잘못인가. 나 또한 타인의 감정을 쓸모없는 투정으로 치부 해버리진 않았는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아이 같은 것이라 여기며 

눈물 서린 입에 재갈을 물린 건 과연 누구인가? 그게 혹시 나 자신은 아닐까? 

스스로의 감정을 부끄러워하고 감정을 느끼는 순간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안 좋은 거야' 혹은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해' 같은 

말도 안 되는 판단으로 태생이 자유로운 감정이란 것의 날개를 꺾어 불구로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시간이 지나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음에도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었다.

 

우리는 위로하는 방법을 잊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가끔 지친 스스로에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당황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당신이 이제 당신의 삶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마음이든 상관없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지금 스스로가 잘 살고 있는지, 자신의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잘 살고 있는 것이고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고민되고 혼란스럽다고 그것을 나쁜 것으로 보지 말자 우리는 항상 고민해야 한다. 

모두가 흐린 눈을 하고 모른 척하는 사는 세상에서 진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현실을 직시하며 고민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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