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내가 발목을 잡다

by 채 은

사교육의 끝판을 달리고, 방황까진 아니지만 방방(트램펄린)도 타고, 어지러이 학원도 빼먹고 숙제도 안 해 다니던 16세 이전까지의 이야기는 뒤로 한다.


그간 희망하는 게 없으니 희망 진로도 적어낼 것이 없어서 네이버 지식인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었던 얘기부터 시작해 본다. 어쩌다 겨우 심리학에 관심을 붙여서, 독서기록장 점수가 중학교 졸업 성적에 플러스알파가 된대도 안 읽던 책까지 찾아 읽었다.


조심스럽게 심리학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빠는 심리학을 취미나 관심사로 갖고, 당신이 하던 일과 비슷한 상경계열을 권했다. 순화했지만 꽤나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걸로 할 직업도 없고 돈도 못 번다는 게 주된 요지였다.


엄마는 내 의사에 쉽게 동의해 주는 법이 없었지만 왜인지 그때만큼은 너와 그런 쪽이 잘 맞을 것도 같다며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지만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에 좌절을 느껴 다시 길을 못 정하던 상태로 돌아왔다.


그렇게 기로에 선 내가 한 선택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공부나 하자!'였다. 난 성적이 높은 학생이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상담 주간에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내 성적으로 지원 가능한 대학 이름을 받아왔었다. 대학 리스트를 몇 페이지씩이나 넘기더니 전부 처음 보는 이름이어서 너무 웃기고 당황스러웠다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얘기를 듣게 만든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 건데, 당시는 뜬금없이 선생님에게 한 번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화가 일었다. 여하튼 복수심에 한 공부는 뜬금없이 전교 등수도 만들어줬었고, 수능날 말도 안 되는 J커브와 이후의 말도 안 되는 백일장 테스트(논술)로 당시 내 머리로는 과분한 인서울 중위권 대학의 상경계열에 어찌어찌 들어갔다.


막 성인이 되어 신학기를 맞이하니, 대학은 내가 알던 우리 동네라는 울타리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집이 대단히 부유한 사람, LP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악기를 제대로 다뤄 밴드를 하는 사람,… 전국에서 모인 이 사람 저 사람이 모두 모여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좋은 사람도, 좋지는 않은 사람도.


그러나 좋고 나쁘고를 떠나 가장 충격이었던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었다. 회계사가 되고 싶어서 회계학과에 진학했고, IT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서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하고, 지리 교사가 되고 싶어서 지리교육과에 진학했다고. 저는 그냥 제일 많이 뽑길래 경영학과에 왔는데요.


그다음 내가 느낀 충격은 그전까지의 나의 가치관이었다. 마치 나와 주변 사람을 그런대로 만족시킬 수 있는 대입을 하고 나면 삶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4년 뒤면 일사천리 하하 호호 어쨌든 회사에서 일하면서 살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실제로 대학교 3학년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성인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도서관에서 밤을 새고 싶으면 새도 되고, 궁금한 과목은 알아서 찾아 수강하고, 쉬고 싶다면? 6개월간 휴학을 해도 된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다 막차를 놓쳐도 되고, 원하는 커리어가 있다면 미리 알아보고 시험을 준비해도 된다. 여태까지 목줄의 길이만큼만 걸어다니다, 세계지도를 펴두고 ‘자, 오늘부터 너 마음에 드는 곳으로 떠나봐.’ 하는 것 같았다.


10대 내내 내인적인 동기로 무언가를 선택했던 적이 나에겐 거의 없었다. 희망 진로도, 공부도, 학부 선택도, 하물며 옷부터 학원까지도. 전부 외부적인 계기로 움직이고 행했던 나로서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가 훨씬 더 어려웠다.


무색무취 같은, 이도 저도 아닌 듯 느끼는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 때론 모른 척도 하려고 했으나 길게 가지 못했다. ‘너는 잘하는 게 뭐야? 관심 있는 게 뭐니? 왜 그게 흥미로워졌니?‘라는 질문을 드물게 받을 때가 있었다.


늘 횡설수설 ’딱히 없다 ‘는 대답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노련한 어른들은 나의 길고 긴 이야기를 '딱히 없어요'로 일축해 들을 줄을 알았다.


'그니까, 아저씨가 듣기에 채은은 명확하게 딱 하고 싶은 거나 잘하는 것도 아직 없다는 거잖아.' 또는, '채은님은 좋게 말하면, 제너럴리스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출난 건 없지만, 또 그만큼 잘 융화된다는 거니까.'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네에'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나에게 딱밤을 때려서 기절이라도 시켜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이 휘청휘청이며 처음 만든 목표가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보기. 늘 외인적이거나 가장 무난한 결정을 했던 10대의 나의 관성에서 벗어나 보기.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이건 끝도 아니고, 끝의 시작조차 아니고, 시작의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