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로 불렸던 사람들

로부터 우리는 강아지로 길러졌다

by 채 은

모처럼 쉬게 된 평일에 약속이 있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곧 들어온다기에, 횡단보도 앞에서 조금은 다급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언제쯤 바뀌려나 두리번거리다 보니 횡단보도 양 끝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보행 신호가 바뀐 지 좀 되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곧 건널 수 있겠다 싶어 조금은 안심한 후에 익숙하게 휴대폰 화면을 보려는데 불쑥 까랑까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왜 강아지라구 그래?”


바로 옆에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 어머니가 서서 함께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의 허리께에 몸을 한껏 기대 부비면서 삐약이는 목소리로 위와 같이 물었다.


“강아지? 귀여운 걸 강아지라 그래. “


아주머니의 답변이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슬쩍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답변이 더 잘 먹히는 시기가 있다는 걸 안다.


‘차는 어떻게 움직여?’라는 질문에 몇몇 부모는 ‘차에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돌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라고 답하는 반면, 어떤 현명한 부모는 ‘바퀴가 빙글빙글~‘ 하고 답한다.


복잡하게 원리를 설명해주는 것보다, 저 간단한 '빙글빙글'이 오히려 더 납득할 만한 충분한 대답이 될 때가 있다.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다시 물으면, 아마 '빙글빙글!'하고 답하는 아이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 나는 그런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어머님이 아이가 이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해주신 줄로 생각하고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두 너한테 '우리 강아지~'라구 부르잖아. 할아버지도 그렇고. 진짜 네가 강아지라는 게 아니라, 귀여운 사람한테 그렇게 '강아지~'하고 부르는 거야."


"그럼 귀여운 건 다~ 강아지야? 엄마도 강아지야?"


아이가 정곡을 찔렀다. '어떤 귀여운 사람은 강아지로 불린다.'라는 특칭 명제와, '모든 귀여운 사람은 강아지로 불린다.'라는 전칭 명제 간의 관계를 물어보는 영특한 아이였다. 그리고 엄마도 기분 좋게 해주는 센스가 있는 아이였다.


"그럼. 엄마도 강아지였고, 아빠도 강아지였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다 강아지였어. 수아처럼."


여태껏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귀동냥을 하고 있다가, 저 문장을 듣곤 나도 모르게 확 고개를 들어 그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조금 뒤에 서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을 살피게 되었는데, 조금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계셔서 마음이 가늠되지 않았다.


"에이! 진짜 강아지도 아닌데 강아지로 부르면 어떡해~"


장난스러운 아이의 핀잔을 끝으로 이미 신호는 언제 켜진지도 모르게 나는 횡단보도 중간까지 건너와 있었고, 그들과 길이 달라 서서히 멀어지며 더 이상의 대화는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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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나는 사실 그런 애칭을 들어온 사람은 아니었다. 딱히 귀엽지 않았어서 그런 소리를 못 들었던 것도 있겠지만,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공주, 애기, 우리 강아지, 하다못해 꿀돼지라도 내 이름 대신 불려지는 호칭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가족에게만 불리는 특별한 호칭—을 부러워해본 적이 잘 없다. 경상도 출신 부모님은 아무래도 그들 또한 그런 애칭으로 불린 적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내 동생 둘은 실제로 많이 예쁘고 귀여웠는데도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한 까닭은, 온 가족이 그 아이를 귀엽게 생각해 '강아지'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내가 감명을 받았다기보다는 '엄마 아빠도 강아지였음'을 설명하시는 어머님의 말이 어떤 상황을 떠올리게 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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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쯤 외할아버지께서는 이사를 하셨다. 그 이후로 몇 차례나 방문하고 들여다보며 지냈는데, 이번 설 연휴에 갑자기 외할아버지께서 서재방에서 무언가를 갖고 나오셨다.


연세가 아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종친회 회장에, 온갖 세무와 회계처리를 다 맡고 계시고, 종묘 제사에도 참여하시기에 손에 들고 계신 것이 어떤 고서인 줄로만 생각했다.


아주 자랑스럽게, 하지만 당신도 조금 멋쩍은 듯 웃으시면서 "채은아, 이것 좀 봐라. 엄마 국민학교 때 받았던 상장부터 할아버지가 다 모아둔 앨범이다." 하며 오래되어 측면이 노래진 앨범을 슥 내미셨다.


엄마의 과거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세 남매가 들뜬 채로 붙어서 구경을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앨범이 4개는 더 있었다. 말씀하신 엄마 국민학교 상장, 대학 졸업앨범부터 아빠와의 결혼식, 나 첫 돌도 되기 전 아기띠에 들쳐 매고 제주도 간 사진까지 전부 다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 당연히 외할아버지는 표현에 서투신 분이니까 엄마를 강아지라고 부르신 적은 없겠지만, 엄마가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강아지임을 나는 그 어떤 귀로 듣는 문장보다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 한 앨범에는 엄마의 것이 아닌 사진도 섞여있었는데, 새하얀 머리에 왜소한 체구로 다소곳하지만 꼿꼿한. 주책인가 싶지만 들꽃 사진이 생각나고 햇빛이 따사로워서 날벌레 날개가 비치는 풍경이 상상되는. 그런 할머니 사진도 있었다.


잘 모르는 얼굴이라 가만히 보다 넘기려던 찰나, 외할아버지께서 '이건 우리 엄마.' 하고 말씀을 해주셨다.

길에서 듣게 된 대화 속 아주머니의 말이 문득 이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강아지였어. 너처럼.' 정말 그랬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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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주머니는 아이가 만족할 만한 쉬운 답변을 해주신 게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들에게 너 또한 예쁨 받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엔진의 회전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어 지면과의 마찰력으로 차가 앞으로 움직인다'는 얘기처럼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가 멍해졌다가 버스에서도 방금 일을 잊을까 황급히 글을 썼고, 한동안 마음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태어나서 눕고, 엎드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온 집안의 경사마냥 사랑을 받기만 했던 우리들 입장에서는 특히나 더. 사실 그 시간마저 너무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경우가 더 많고.


그럼에도 가끔씩 이 사실을 떠올리면, 아무 생각 없다가도 내가 이번엔 돌려드려야지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드물게는 그들이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실수로 욱하거나 짜증낼 뻔할 때, 혹은 마음만 먹으면 손 닿을 수 있을 때에 그들을 귀여워해보기로, 사랑해보기로 한다. 강아지처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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