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집은 나

돌아가야겠다면 그곳은 나여야 한다

by 채 은

20대에 휘청휘청이며 뜯어고치려 애쓰고 있는 두 번째 것은 고질적으로 외주를 맡기던 감정 처리 방식이다.


나이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는 대가족이어서, 역설적이게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가족과의 교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다 모일 시간에 나는 학교나 학원에 가 있고, 독서실에 있다가 돌아오면 모두가 자고 있었다. 공휴일이나 주말에도 모두가 시간이 맞는 적이 잘 없었다.


어떤 활동을 함께하기엔 50대의 부모님, 20대 초반, 10대 중반, 초등학생 하나가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한둘도 아니고 성향이 다른 다섯 모두가 불만 없이, 만족할 수 있는 무언가는 늘 참 도모하기 어려웠다. 저녁 메뉴조차도.


공통 관심사도 형성되기 어려웠고, 누군가의 주제와 감정과 고민은 다른 누군가에겐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집안 내외로 본인에게 주어지는 역할을 각자 알아서 잘하기‘라는 기대를 각자가 정말 잘 책임지는 집단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학창 시절부터 많은 집을 만들었다. 어디서 한 대 쥐어 박히면 ‘있잖아 쟤가 나한테…!‘하며 뛰어 들어가 엉엉 울 수 있는 집을 많이도 만들었다. 마음이 비빌 언덕이 없을 때, 언제든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곳을 늘 뒀다.


가령,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년 두 번의 명절마다 특정 친척들에게 트집을 잡혔다. 외모로, 몸무게로, 키로, 성질머리로, 성적으로. 주제도 다양했다.


'동생은 눈 크고 예쁜데 너는 아무도 안 닮은 것 같구, 성장기엔 살 좀 빼야겠다, 면역력 문제로 한약 먹느라 살이 빠졌을 땐 또 너무 말라서 보기 안 좋다, 여자치고 키가 너무 크다, 사춘기라 그런가 왜 이리 안 살가워? 교정하기 전엔 이- 해봐 이.'


덕분에 매 명절 편의점 간다고 해놓고 공원에서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다 너무 많이 들어서 유형을 외워버렸고, 열일곱쯤부터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하나씩 소거하는 여유까지 기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용서해 그들의 과오가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쩌다 부모님께 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냐고 물으면, 그들이 나를 '반가워해서' 또는 '장난으로' 한 말이라며 되려 두둔했다. 아마 친척간에 껄끄러워지기 싫어 그랬을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고서 이해했다.


그런 상황 한가운데서 있다 보면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기 싫어 스스로 감정을 검열하기 일쑤였고, 뛰쳐나온 후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황을 쏟아내듯 전했었다.


속으로 용해시키고도 감당되지 않는 이 초과분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해야만 했던 것 같다. 이 무례함과 불쾌감을 이해해 주고, 자신의 일처럼 화를 내주고, 나 대신 욕을 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안정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집 같은 친구를 둘 수 있었고, 집이 되어주는 언니들을 사회에서도 만났고, 집처럼 느끼게 하는 사랑을 했다. 그중에는 내 발로 떠나온 오두막,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진 다락방도 있고, 더 이상 나에게 집이 되어주지 않기로 결심한 주택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 자연스럽게 조금씩 멀어졌다. 일주일에 5일은 반드시 얼굴을 보며 하루의 절반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전국에 흩어져 일 년에 두 번 보기도 어려웠다. 과제네 시험이네 같이 칭얼거리며 밤새던 사람들은 누구는 병원에, 공기업에, 은행에, 스타트업에, 자영업에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살아가게 되었다.


또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연애가 그렇듯, 매일같이 전화하고 자기 전까지 문자 하며 가족보다 더 가까운 듯했던 연인도 어떤 날은 가장 멀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삶의 어느 시점이든 그렇게나 긴밀한 관계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은 몫을 알아봐서가 아니라, 기꺼이 자신의 마음의 방을 공유하고, 함께 뚝딱뚝딱 공들여지어 준 그들의 노고가 배로는 컸음을 떠나고 나서야 늘 실감했다.




그러다 프로젝트에서 의견 충돌을 겪던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팀원이 문제 해결이 아닌 자신의 감정 해소에 집중하는 탓에 하루 종일 날 선 분위기에 시달렸다. 체한 듯한 마음에 터덜터덜 걷다가 어디라도 오늘 있던 일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는데, 연락할 곳이 없었다.


안 그래도 있던 답답함이 꽥 올라와 목을 조여맨 것 같았다. 동시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타인에 해당하는 모두는 나에게 부정적인 경험이 발생할 때마다 즉시 응해줄 수 없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데, 나는 왜 이렇게 상실을 느끼는 건지 낯설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상실감을 가장 느끼는 지점이 사실은 내가 가장 취약하고 의존하게 되는 부분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에게는 그게 감정을 씹고 삼키는 과정이었다.


이 역할을 위탁할 곳이 없더라도 그걸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게 나의 숙제라고 생각했다. 이 우연한 일로 나는 나의 안정을 유지해 주던 누군가 - 가족, 친구, 지인, 연인 - 가 자리를 비운대도, 감정을 녹이는 일을 내가 잘할 줄 알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제야 나는 내 안에 처음으로 집을 지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능하다면 매일마다 회고하는 습관을 만들게 되었다. 집이라기에 부끄럽지만, 장신인 나 하나 들어가면 꽉 맞는 공중전화 부스 같은 공간을 문장들로 채웠다.


사사로운 일상과 감정의 일화들이 꼭 누군가에게 공유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나에게 이해받아 남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휘청휘청하다 좋은 발재간을 터득한 것처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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