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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Apr 09. 2021

아이는 로봇이 아니다

아이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하는 일

아이는 호불호가 강한 편이다. 28개월인 지금, 또래보다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크게 소리 내어 울거나 고개를 흔들거나 '아니야!'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무언가 싫다는 표현을 확실하게 한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 까르르 웃고 춤을 춘다. 자신의 좋고 싫음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달리 이야기하면 나의 주관이 뚜렷하게 생겼음을 의미할 것이기에,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요즘 들어 아이의 이런 성향이 엄마에겐 때로 버거울 수 있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오늘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미술놀이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코로나 탓에 사람들을 만난 지도 오래되었고, 수업에 참여하며 잠시라도 집콕 육아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이가 즐겁게 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센터에 갔다. 몇 달 전에 신청했던 프로그램에서 아이가 너무 울고 떼를 쓰는 바람에 수업을 취소했던 적이 있어서 사실 불안했다. 또 같은 상황이 일어나서 엄마를 힘들게 할까 봐.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오늘도 수업이 시작하기가 무섭게 자지러지게 울며 밖에 나가자고 발버둥을 쳤다. 선생님까지 동원되어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고 진땀을 뺐다. 파란색 빨간색 셀로판지를 보여주며 가위로 잘라보게도 하고 도화지 위에 붙여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느 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의 울음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그냥 멍해졌다. 이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처럼 목놓아 울고도 싶었다. 내 감정도 주체를 못 하겠는데 이 상황에서도 나는 아이를 달래야 한다는 게 너무 짜증이 났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다른 애들은 엄마랑 재밌게 활동하는데 왜 우리 아이만 저럴까.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수업인데, 이것마저 못하게 되면 집콕 육아하며 나만 더 힘들어지겠구나. 나는 육아가 왜 이렇게 수월하게 되는 게 하나도 없을까. 부정적인 생각은 물귀신처럼 더 부정적인 생각들을 끌고 들어와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채로 도망치듯 센터를 나왔다.


생각해 보면, 아이는 의도적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앉아서 정적으로 활동하는 게 싫은 건지, 그 환경이 답답한 건지, 그냥 재미가 없었는지, 밖에 나가 놀고 싶었던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엄마 말 잘 듣고, 엄마가 이야기하는 대로 잘 따라주는 아이라면 엄마는 분명 편하고 좋을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내게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보다는 내가 계획한 대로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아이는 인형도 아니고 내가 조종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지 않은가.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아이는 분명 나의 부속품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인 것이다. 아직 어려서 논리적으로 '이러이러해서 난 이게 싫어요'라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온몸으로 자신의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아이를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그리도 화가 났던 거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니 머리 끝까지 치밀었던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짐을 느꼈다. 나의 감정의 원인을 파악하고 아이를 존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날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음 주 목요일에 수업이 있다. 처음에는 그냥 수업 취소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와 내가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그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 더 부딪쳐 보기로 했다. 아이가 오늘 그랬던 것처럼 또 울고 떼를 쓰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처럼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 보려고 한다. 시도해 보다가 그래도 힘들면 그때 수업을 그만두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오늘,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으며 남편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하다 살짝 눈물도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더듬거리며 지나가는 것 같은, 길고 긴 하루였다. 매일같이 겪는 이 크고 작은 곡절들도 언젠간 지나가리라. 그리고 그런 고민과 시련들이 내게 작게라도 뭔가 남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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