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서울의 도서관들이 문을 닫으니 실의에 빠진 나. 다리에 근육 경련이 왔다는 사유로 근무를 거르고 쉬기로 결정해놓고 글조차 한 줄 쓰지 못하고서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쉬는 월요일의 나. 익숙한 도서관들이 닫혀있고 몸도 별로도 날씨도 폭염이라는 핑계로 낮 12시까지 방구석 침대에서 뒹굴 거리던 나...
그래도 이대로만 하루를 보내는 건 너무 너무 부끄러우니까 월요일에 열린 도서관을 찾아볼까 하다가 의외로 매우 가까운 곳에 밤 9시까지 열린 도서관을 발견했다. 바로 동네 주민센터 1층에서 운영하는 카페겸 작은도서관. 폭염쉼터도 겸하는 곳이라 굳이 음료까지 시키지 않아도 눈치보지않고 홀로 앉아있어도 되는 멋진 도피처.
장서는 당연히 많지는 않지만 동네 아이들도 많이 찾아오도록 타겟팅한 동네도서관답게 학습과 만화쪽 도서가 의외로 풍성했다. 게다가 인간실격 만화판이라니 이건 한마리 고양이로서 절대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기름 잘잘 흐르는 고등어가 틀림없다. 표지부터 왠지 아동용이 아닌것 같은 광기가 흐르는 인물들의 표정이 그 증거다
부끄럼 많은 생을 보냈다는 주인공 요조...
인간실격의 이 첫 문장이 인상적인 세계문학의 첫 문장으로 세계 탑10에 든다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본거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런 글에 공신력은 있을 리가 없지만 적어도 인간실격의 저 문장은 소설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이 분명하다. 행복한 듯 웃고있는 유년시절의 가족사진과 함께 저 문장을 보니 더더욱 모순적이고도 애가 타는 말.부끄럼 많은 인생
유복하고 모자랄 것 없이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요조에게 어느 평범한 식사시간에 큰 불안과 시련이 들이닥친다. 그저 죽고 싶지 않아서 다들 일을 하고 있고 밥을 먹고 있는 건가? 그저 잘 살고 있던 내가 생각하던 행복과 남의 행복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불안감...
이렇게 다른 내 마음을 누가 눈치채면 어쩌나. 나를 다들 싫어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그때부터 그저 남을 웃기게 하는 언행과 거짓 웃음으로 자신을 가득 채워버린 요조... 그때부터 타인의 얼굴과 감정도 제대로 읽지 못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그 어린 날부터 인생이 불안하고 허무하다고 느끼고, 고등학생때부터는 유일한 친구 호리키를 따라다니다가술과 여자에 빠져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고 한없이 무의미한 20대를 보내는 요조. 심지어 같이 지내던 여자와 동반자살 시도까지 하고 나서도 전혀 갱생하지 못하던 요조에게 한 여자가 또 찾아온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닐까. 요조는 그녀를 위해서 정신을 차려서 제대로 살아보겠다며 열심히 팔기위한 만화를 그리고 그녀와의 생활을 꾸린다. 심지어 만악의 근원이었던 술마저 끊어보겠다며 이전의 생과는 차원이 다른 실천을 보여주는 요조...
요조는 그 뒤로도 수많은 일을 겪는다. 시간이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이제 겨우 스물 일곱인데 머리는 40 50은 넘어보이는 듯 백발이 가득해진 요조... 마음은 여전히 상처받기 무서워하고 싫은 것도 남에게 거절을 못하는 스물 일곱의 어른아이 요조.
요조는 결국 자기만의 행복에 이르렀을까
더 구체적인 이야기의 절정과 결말의 디테일은 직접 읽는 분들을 위해 남겨놓기로...
Ps.소설에서의마지막 문장은 마담의 요조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 그 또한 분명 첫 문장만큼이나 소설 전체의 백미인데 만화에서는 빠져있어서 살짝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 길지도 않으니 꼭 소설을 읽지 않은 분은 인간실격 소설도 읽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