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리사랑
엄마가 암투병을 시작한지도 벌써 4년을 향해 간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복통으로 인해 응급실 2차례 입원. 대장 내시경을 통해 대장암 처음 발병 확인. 대장암 3기C 상황에서 첫 수술후, 예방 항암 8회. 깨끗하게 치료되고, 약 1년 6개월 행복하게 지냈음. 1년 6개월 뒤 재발. 간, 폐로 전이된 대장암 4기가 되었음. 두 번째 수술 후, 기약없는 항암 시작. 약 2년여가량을 항암제로 버티시다가 결국 내성이 와서 치료 중단.
그리고 조금씩 엄마는 변해간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어 간다. 그동안 항암제가 눌러주고 있던 몸 속의 암덩어리들이 제멋대로 활개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걷기도 제대로 못하신 채, 다리와 손이 퉁퉁 부어 있다. 몸에 물이 차고 있는 것이다. 배는 조금씩 단단해져 간다. 그리고 그 단단한 것들이 장기들을 누르고 있는지,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잘 먹지도 못하게 만든다. 호흡도 힘들어하신지 오래다.
그러나 현대 의학으로는 방법이 없다. 도대체 무슨 방법이 남아 있을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통증이 심해지기 전, 미리 호스피스를 예약하는 것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어머니를 보면서 두려움과 걱정에 자식들의 마음도 타들어간다. 자식들도 이런데, 하물며 본인은 또 어떠랴. 게다가 유독 겁이 많으셨던 어머니였다.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예전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어머니는 갑상선의 혹이 엄청나게 커져서 병원에 검사를 하러 갔었다. 갑상선 같은 경우 조직 검사를 할 때, 긴 주사바늘을 갑상선에 푹 찔러넣어 이리저리 헤집은 다음에 조직을 추출한다. 그 과정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경험을 한번 하고는 참을성이 강한 엄마도 혀를 내두르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리고 조직검사 결과는 암이었다. 갑상선 암. 그때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짐짓 태연한 척,
‘그러면 저 이제 죽는 건가요?’
당시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식 셋을 키우며 서울에서 좌충우돌 살고 있던 어머니는 치료를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오셨다. 다행히도 갑상선은 다른 암에 비해 순한 암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갑상선은 육안으로도 남들보다 확연히 커져있는 상태였으나, 다행히 그 상태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갑상선기능이 크게 저하되면, 사람은 쉽게 피로해진다. 엄마는 그런 상황에서도 자식 셋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열심히 살아오셨다. 단 한번도 자식 셋의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삼시 세끼 모두 정성이 들어간 집밥을 가족들에게 맛있게 준비해주셨다.
이제는 그 음식을 더 이상 맛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이제 밖에 나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예전처럼 음식을 맛있게 드시지도 못한다. 점차 생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시고 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우실까. 우리들도 이렇게 두려운데....
며칠 전, 지방에 살고 있는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따르릉"
"네, 이모. 무슨 일이세요?"
"어, 너 둘째 요즘 말좀 하니?"
"세환이요? 아뇨.. 아직도 말을 잘 못해요. 그런데 그건 왜요?"
"아니, 방금 언니랑 통화했는데, 이렇게 아프신 와중에도 세환이가 아직 말을 못한다고 계속 걱정하시더라구. 그런데 우리 둘째도 말을 엄청 늦게 했거든. 말을 잘 못하다가 나중에 한번에 완성된 문장으로 말을 시작해버리더라고...그 얘기 들려주려고 전화했지.."
"아, 엄마랑 통화하셨구나.. 엄마가 세환이 걱정 많이 하세요?"
"응. 본인 몸이 그렇게 안 좋은데도, 세환이가 아직 말을 못한다고 계속 그 걱정을 하더라고.."
아, 어머니...
본인의 몸이 그렇게 힘들고 아프신데도, 아직 말을 못하는 우리 둘째 아들 녀석 걱정을 그렇게 하고 계셨다니...
할머니의 손자 사랑 앞에 당신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문득 눈물이 핑 돈다.
제발 이번 년까지만이라도 엄마가 살아계실 수만 있다면...
가만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내년에 큰아들 세준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만이라도 보고 가신다면, 평생 더 이상 다른 소원이 없겠습니다. 만약 제 남은 목숨 중 1년을 엄마에게 드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