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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과 환 Oct 25. 2023

#2 여행은 되돌아올 수 있을 때 행복하다.

# 여행은 되돌아올 수 있을 때 행복하다.   

  

호흡이 가쁜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갔다가 집으로 퇴원하여 돌아오던 날, 가정용 산소발생기를 옆에 두고, 여기가 병원 특실이라고 엄마에게 농담을 하며 웃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몇 달이나마 우리 곁에 더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우리 곁에 더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했었다. 아빠도 말기암일 때 산소콧줄을 하고, 두세달은 더 사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상황이 다르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간다. 급히 여기저기 호스피스에 전화를 돌렸다. 시설이 괜찮고 환자를 잘 돌봐준다고 하여 미리 예약을 해놓았던 XX 호스피스와 OO 호스피스는 지금부터 2주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2주는 우리에게 사치였다. 지금 엄마에게 1주, 아니 단 며칠이라도 시간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마냥 2주동안 호스피스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모 병원 호스피스에 전화를 해보니, 딱 한자리가 마침 남아 있다고 한다. 예약을 하고 싶다고 하니, 지금 당장 외래 접수를 하고 담당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단다. 4시 30분까지만 진료 시간이라고 하는데, 마침 시간이 딱 4시다. 지금 바로 운전해서 가면 어떻게 도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초행길을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로, 급한 마음에 요리조리 얌체 운전을 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제 시간에 병원 접수처에 도착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더니, 담당 의사 선생님이 바로 월요일 아침에 호스피스로 입원을 하라고 하신다.     


휴... 그래도 집에서 고통을 온전히 겪지는 않으시겠구나.     


다행히 들어갈 수 있는 호스피스 자리가 생겼다. 

예전 같았더라면, 매일 하루의 기도가 엄마의 병이 낫기를, 엄마가 우리 곁에 좀더 살아계시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면, 언젠가부터 엄마가 고통 없이 주무시다가 멀리 하늘나라로 소풍을 가시기를 기도했다.     

 

주말 이후 엄마는 호스피스로 들어가신다. 

호스피스로 들어가면 이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집에서의 마지막 주말이다.    

 

나와 동생, 누나 모두 엄마의 집에 모였다. 늘 엄마를 보러 오곤 했던 엄마의 집에서 엄마와의 마지막 주말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엄마는 자식들과 이야기를 할 힘조차 없다. 거의 모든 시간을 주무시기만 하신다. 소변이 안나오신지는 벌써 5일이 넘었다. 그 전에는 혈뇨와 혈변을 보셨다. 엄마는 안방 침대에서 주무시고, 자식 셋이 모여서 주무시는 엄마를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지금이라도 깨어나서 건강한 목소리로 큰아들 왔냐고 반겨주시며 그 따뜻한 손으로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해주실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젠 그 음식도, 그 목소리도 모두 끝이다.      

두렵다. 엄마의 마지막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저물어 간다.     


그런데 다음날 모 병원 호스피스에서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XX병원을 다니시던 엄마 입장에서는 이 병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응급실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평소 냄새에 민감하던 엄마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안그래도 내가 그 병원에 접수하러 갔을 때 보니, 아무래도 기존에 다니시던 대형병원과 달리 뭔가 모르게 어수선하고 낡아 있긴 했다. 엄마는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결국 누나와 함께 다시 사설 구급차를 불러 서울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구급차 안에서 엄마와 누나는 말없이 한참을 손을 잡고 같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엄마의 집. 

엄마는 또 한번 의식이 있는 상태로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자리가 있었던 모 병원 호스피스를 거절한 후, 이제 갈 곳이 없다. 이제는 기존에 예약한 호스피스 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만약 고통이라도 시작되면, 그때는 어떻게든 기존에 다니던 병원 응급실로 가는 수밖에...     


엄마는 그렇게 이틀을 집에서 버티셨다.      


이틀째 되는 오후, 직장에서 조퇴하고 나는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의 상태는 더 안 좋았다. 나를 보자,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늘 앉아서 밖을 내다보시던 의자에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천천히 한걸음씩 간신히 내딛어 의자에 앉아 한참을 밖을 바라보시다, 다시금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상태로 계속 주무셨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리시더니, 이제는 응급실로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신다. 


119를 불러달라고 하신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직감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제 엄마에게 이 집은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다. 엄마가 의자에 앉아 늘 밖을 내려다보시곤 했던 그 모습도, 마루에 누워서 손과 발을 흔들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던 그 모습도 이제는 모두 마지막이다. 119가 오는 동안에도 엄마는 계속 졸고 계신다.  

   

그리고는 병원 응급실로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다.     


엄마가 예전 항암주사를 맞으며 암투병을 하던 1년 6개월 동안, 놀러가기 좋아하셨던 태안이 떠오른다. 엄마는 태안의 천리포 해변에서 맨발로 해변가를 걷기를 좋아하셨다. 내가 아이들과 해변에서 놀아주고 있는 동안, 엄마는 저 멀리 해변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몇 번이나 왕복을 하시곤 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띈 채로.     


그리고 수산 시장에 들러 온갖 신선한 해산물을 사와서 숙소에 가서 맛있게 요리해먹었다. 엄마가 좋아하던 태안 로컬푸드 마트, 언제나 들려서 꽃게와 조개를 사오곤 했던 모항항, 모두 여행을 가면 필수로 들려야 했던 곳들이었다. 그러나 여행이 아무리 즐겁고 신나도,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집이 있어서였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행은 행복이 아니라, 우울함과 두려움을 준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만 여행은 우리에게 설렘과 행복한 추억을 안겨준다.     

 

이제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실 것이다.     

언제나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 집이 새삼 소중함을 알겠다. 손잡이를 잡고 열고 들어서는 집의 모습 하나하나가 엄마에게는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다시 돌아가고 싶으셨을까.


엄마는 그렇게 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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