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빈칸

삶의 빈칸 : 내가 완전히 무시하고 있던 영역

by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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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을 통해 우리는 일주일치 5W1H를 노트에 펼쳐놓고,

형광펜으로 색칠을 해봤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한 가지가 걸렸어요.

색칠이 안 된 칸이 아니라, 색이 아예 없는 영역.

건강, 배움, 회복 : 이 단어들이 일주일치 기록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 번도 안 했으니까 기록할 것 자체가 없었던 거예요.

채워진 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줄 뿐입니다.

진짜 발견은 빈칸에서 옵니다.



왜 빈칸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보통 자기 삶을 떠올릴 때, 대부분 두 개의 카테고리로 생각합니다.

일, 그리고 그 외.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일이 좀 바빠"라고 답하거나,

"쉬는 날에 뭐 해?"라고 물어보는 식이에요.

삶이 '일'과 '일 아닌 것'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 카테고리가 두 개밖에 없는 것처럼.

그런데 진짜 그런가요.

회사에서 분석할 때는 이렇게 안 합니다.

"매출이 좋아요, 아니에요?"라고 묻지 않아요.

매출을 프로덕트별로, 지역별로, 채널별로 쪼갭니다.

비용도 마찬가지예요.

인건비(MM), 마케팅비, R&D 비용 : 항목별로 나눠야 어디서 돈이 새는지 보이니까요.

전략에서는 이것을 가리키는 원칙이 있습니다.

겹치지 않게, 빠지지 않게.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라고 부르는데,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원리입니다.

무언가를 분석할 때, 카테고리가 서로 겹치면 중복 계산이 생기고,

빠지면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것.

분석에서는 당연한 원칙인데, 자기 삶에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일"과 "여가". 이 두 칸만으로 삶 전체를 담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 됩니다. 빠진 칸이 너무 많아요.


삶을 여섯 칸으로 나눠보다

삶의 영역을 좀 더 정직하게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겹치지 않게, 빠지지 않게.

여섯 개의 칸을 만들었어요.

일: 돈을 벌거나, 커리어를 쌓거나, 직업적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활동.

관계: 가족, 친구, 동료. 사람과의 연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활동.

건강: 운동, 수면, 식사, 병원 등 몸과 마음을 돌보는 활동.

배움: 새로운 것을 익히거나, 깊이를 더하거나, 호기심을 따라가는 활동.

표현: 글쓰기, 요리, 음악, 만들기 등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창작하는 활동.

회복: 아무것도 안 하기, 산책, 명상, 취미 등 에너지를 채우는 활동.

소비와는 다릅니다.

넷플릭스를 보는 것과 산책을 하는 것은 같은 "쉬는 시간"이지만,

하나는 소비이고 하나는 회복이에요.

여섯 칸이 정답인 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맞게 칸을 추가하거나 뺄 수 있어요.

핵심은 "일과 여가" 두 칸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입니다.

이 여섯 칸에, 1장에서 기록한 일주일치 5W1H 데이터를 배분해봤습니다.

결과가 이랬어요.

일: 0% (육아휴직이니까)

관계: 25% (대부분 아내와 아이)

건강: 5% (의도적 운동이나 관리는 거의 없음)

배움: 10% (책을 조금 읽었고, 유튜브에서 뭔가를 봄)

표현: 10% (글을 한 번 써봤고, 요리를 두 번 함)

회복: 0%


숫자를 보는 순간,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하나는 '관계' 칸의 25%가 사실상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아내와 아이를 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투입한 에너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친구를 만난 날이 없었어요. 전화를 건 날도 한 번.

1장에서 "사람과 대화한 날에 Why 칸이 풍성해진다"는 패턴을 발견했는데,

정작 그런 날이 일주일에 두 번뿐이었던 거예요.

중요한 걸 알면서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다른 하나는 '회복' 칸의 0%.



0%의 의미

회복이 0%라니. 쉬는 시간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시간은 있었어요.

핸드폰을 보던 시간, 유튜브를 보던 시간.

그런데 그건 회복이 아니었어요.

회복과 소비는 다릅니다.

소비는 시간을 쓰지만 에너지가 돌아오지 않는 활동이에요.

유튜브나 릴스를 2시간 봤는데, 보기 전과 후의 컨디션이 같거나 오히려 더 처지는 경험.

모두들 해본 적 있을 겁니다.

회복은 시간을 쓰고 나면 에너지가 돌아오는 활동입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아, 좀 살 것 같다"고 느끼는 것.


저는 8년 동안 소비를 회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어요.

퇴근 후에 소파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걸 "쉬는 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말에 늦잠 자는 걸 "충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지쳐 있었죠.

쉬었는데 회복이 안 되는 이상한 상태.

프롤로그에서 간 수치가 빨간색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을 겁니다.

회복을 안 한 게 아니라, 회복의 칸 자체가 없었던 거예요.

칸이 없으면 넣을 수가 없습니다.

"일과 여가"라는 두 칸짜리 세계에서는, 회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여가 시간에 뭔가를 하면 "놀았다"이고, 아무것도 안 하면 "쉬었다"이니까.

그게 소비인지 회복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구분하는 순간, 분명해져요.

퇴근 후에 소파에서 릴스를 넘기는 건 소비입니다.

같은 소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 건 회복이에요.

시간은 같고, 장소도 같고, 심지어 자세도 같을 수 있어요.

그런데 30분 뒤의 상태가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더 피곤해지고, 하나는 돌아옵니다.

칸을 나누는 순간, 빈칸이 보입니다. 빈칸을 보는 순간,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당신의 빈칸은 어디인가요

제 빈칸은 '회복'이었어요.

당신의 빈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 칸이 비어 있을 거예요.

바쁘게 일하면서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었고,

가족과의 시간도 의무적으로 채우는 수준인 경우.

관계가 "유지"는 되지만 "투자"는 아닌 상태.

어떤 사람은 '배움' 칸이 비어 있을 겁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마지막으로 순수하게 호기심으로 뭔가를 찾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는 경우.

어떤 사람은 '표현' 칸이 비어 있을 거예요.

입력은 많은데 출력이 없는 상태.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정보를 많이 소비하지만, 자기 생각을 밖으로 꺼내본 적은 없는 경우.

빈칸이 뭐든, 중요한 건 하나예요.

빈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게 빠져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관계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

관계가 비어 있다고 인식하지는 못해요.

"딱히 배울 게 없어서"라고 말하지,

배움이라는 칸 자체가 비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칸이 없으니까 빈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빈 것이 보입니다.



채워진 칸의 함정

빈칸만 문제가 아닙니다.

너무 꽉 찬 칸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제 경우, 육아휴직 전 데이터를 추정해보면 이랬을 겁니다.

일: 60%

관계: 15% (거의 가족)

건강: 5%

배움: 10% (업무 관련)

표현: 5%

회복: 5% (소비를 회복으로 착각한 숫자)

일이 60%입니다. 나머지 다섯 칸이 40%를 나눠 갖고 있어요.

이건 포트폴리오로 치면 극단적인 편중이에요.

주식 하나에 전 재산의 60%를 넣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 주식이 흔들리면; 그러니까 일에서 성장이 멈추고 역할이 줄어들면

당연하게도 삶 전체가 흔들립니다.

실제로 그랬어요.

회사에서 역할이 좁아지자, 삶 전체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일 외에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 없었으니까요.

당연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집에서도 짜증도 많이 냈죠

편중은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취약합니다.

한 영역에 에너지를 몰아넣으면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요.

그런데 그 영역이 흔들리는 순간, 넘어집니다.

다리가 하나인 의자가 효율적인 게 아닌 것처럼, 삶도 여러 기둥으로 서 있어야 안정적이에요.

재미있는 건, 이걸 회사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포트폴리오 분석을 할 때,

특정 그룹에게 매출이 80% 이상 집중되어 있으면 "리스크"라고 보고서에 씁니다.

분산이 필요하다고 권고해요.

그런데 내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 시선을 적용해본 적이 없었어요.

남의 회사에는 분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내 삶은 한 곳에 올인하고 있었던 겁니다.




워크시트: 삶의 영역 매핑

1장의 5W1H 기록을 꺼내서, 아래 여섯 칸에 배분해봅니다.

일: 직업적 역할, 커리어, 돈 버는 활동 — ____%

관계: 가족, 친구, 의미 있는 대화 — ____%

건강: 운동, 수면 관리, 몸 돌보기 — ____%

배움: 호기심, 새로운 시도, 깊이 파기 — ____%

표현: 글, 요리, 음악, 무언가 만들기 — ____%

회복: 에너지가 실제로 돌아오는 활동 — ____%

합계가 100%가 되도록 적습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체감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① 가장 큰 칸은 어디인가? 그 칸에 편중된 이유는 무엇인가. 의도인가, 관성인가.

② 0%이거나 0%에 가까운 칸은 어디인가?

그 칸이 빈 이유는 "필요 없어서"인가, "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서"인가.

③ 소비와 회복을 구분할 수 있는가?

"쉬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활동 중, 실제로 에너지가 돌아오는 것은 어느 것인가.


삶에서 빠진 조각을 발견하는 것이, 채워진 조각을 분석하는 것보다 강력합니다.

채워진 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줄 뿐이에요.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알고 있었죠.

그런데 "나는 회복이라는 칸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이건 몰랐습니다.

당연히 번아웃이 올 수 밖에 없어요.

모르던 걸 알게 되는 순간,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비어 있는 칸을 채울지, 넘치는 칸을 줄일지,

아니면 칸 자체를 재배치할지.

그 판단은 다음 연재에서 같이 해볼거에요

지금은 지도를 그리는 단계입니다.

다음 챕터에서는, 이 지도 위에 에너지의 흐름을 올려볼 겁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에너지가 차는 때가 있고, 새는 때가 있어요.

그 차이를 추적하면, 시간 관리가 아니라 에너지 관리라는 전혀 다른 지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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