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안만 들여다보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분석가가 기업 내부만 보고 전략을 짜지 않듯,
나를 이해하는 일도 나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아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쟁자가 뭘 하는지,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처럼
바깥을 봐야 안이 선명해집니다.
이전 파트에서 나를 관찰했습니다.
하루를 기록하고, 빈칸을 찾고, 에너지의 흐름을 추적했어요.
이제 그 데이터를 가지고, 시야를 나 바깥으로 넓혀볼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되는가.
육아휴직 서류를 내는 날, 팀장님이 물었습니다.
"복귀하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
올바르게 대답을 못 했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원래는 이런 질문에 막히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회사의 방향은 줄줄 읊을 수 있었습니다.
시장이 어디로 가는지, 경쟁사가 뭘 준비하는지, 우리 제품의 포지셔닝이 어때야 하는지.
그런데 "너는 뭘 하고 싶어?"라는 질문 앞에서 멈춰버렸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회사의 3C는 완벽하게 알고 있었지만,
나 자신의 3C는 한 번도 정리해본 적이 없다는 걸.
기업 전략에서 3C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Company : 우리 회사는 뭘 잘하는가.
Customer : 고객은 뭘 원하는가.
Competitor : 경쟁자는 뭘 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봐야 전략이 나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의미 없고,
고객이 원해도 경쟁자가 이미 잘하고 있으면 기회가 좁아요.
세 원이 어디서 겹치고 어디서 벌어지는지를 보는 게 전략의 출발점이에요.
이걸 나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바뀝니다.
Company → 나. 내가 가진 역량, 경험, 자원.
Customer → 내가 원하는 삶. 나의 진짜 니즈.
Competitor → 세상의 기대. 조직, 사회, 가족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
기업 분석에서 3C를 수백 번 했으면서, 이 세 가지를 나 자신에게 적용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가장 쉬울 줄 알았는데, 가장 어려운 칸이었어요.
"나는 뭘 잘하는가."
회사에서의 역할은 바로 나옵니다.
전략 기획, 데이터 분석, 구조화, 인사이트 도출.
8년간 해온 것들이니까요.
그런데 이건 '직무 역량'이지, '나의 역량'은 아닙니다.
직함을 빼면 나는 뭘 잘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많은 사람이 멈칩니다.
직함이 곧 나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에요.
"나는 분석가야"가 아니라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이야?"를 물었을 때,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질문을 해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이전 글에서 5W1H에서 발견한 패턴, 에너지 지도에서 확인한 충전 활동.
거기서 나온 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복잡한 것을 구조화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다.
깊이 파는 것을 좋아하고, 파고든 것을 글이나 프레임으로 정리하면 에너지가 올라간다.
혼자 시작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정리된 결과물을 나눌 때 보람을 느낀다.
이건 직무 설명서에는 없는 내용이에요.
이력서에도 쓰기 어려운 것들이죠.
그런데 나라는 사람의 역량을 설명하는 데는 이 쪽이 훨씬 정확합니다.
기업 분석에서도 마찬가지예요.
Company를 분석할 때 "매출 500억, 직원 300명"이라는 스펙만 보면 안 됩니다.
"이 회사가 진짜 잘하는 게 뭔데?"를 물어야 해요.
겉에 보이는 스펙이 아니라, 그 회사만의 핵심 역량.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뭘 원하는가."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특히 "원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이 오랫동안 구분되지 않았던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사회가 좋다고 하는 것을 나도 좋다고 느끼거나.
직접 물으면 답이 안 나올 때, 역방향으로 접근하면 됩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하루를 묘사해보세요.
그 반대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적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른 사람이 정한 일정을 따라가며,
방향 없는 회의에 앉아 있고, 하루가 끝나도 내가 만든 게 아무것도 없는 날.
이게 제가 가장 싫어하는 하루였어요.
그러면 반대편은 뭘까요.
내가 정한 시간에, 깊이 파고드는 작업을 하고, 하루가 끝났을 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는 날.
그게 내가 원하는 하루였습니다.
더 넓히면 이런 그림이 나왔어요.
내가 원하는 삶은 "깊이 파고,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반드시 회사 밖이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세 가지가 가능한 환경이어야 합니다.
에너지 지도에서 이미 힌트가 있었어요.
구조화할 때 에너지가 올라가고, 방향 없는 대화에서 빠졌잖아요.
Customer 칸은 Part 1의 관찰 데이터가 채워줬습니다.
머리로 고민하지 않아도, 데이터가 이미 답을 갖고 있었어요.
"나는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아직 내 데이터를 안 봤다"에 가까웠습니다.
Competitor는 '같은 시장에서 같은 고객을 놓고 경쟁하는 회사'예요.
개인에게 적용하면, 경쟁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
그게 경쟁자입니다.
왜 경쟁자냐면, 세상의 기대와 나의 욕구가 같은 자원
내 시간, 에너지, 선택 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이에요.
제 경우, 세상의 기대는 이랬습니다.
조직의 기대: "팀을 키우는 리더가 돼라. 실무보다 매니징을 해라."
사회의 기대: "안정적인 가장이 돼라. 무리한 도전보다 지금의 자리를 지켜라."
가족의 기대: "곁에 있어라. 아이가 클 때까지는."
업계의 기대: "경력에 맞는 포지션으로 가라. 8년 차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나하나는 다 합리적이에요.
나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이면, 나의 Customer 내가 원하는 삶 와 충돌합니다.
나는 깊이 파고 싶은데, 조직은 넓게 관리하라고 합니다.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데, 사회는 안정을 지키라고 합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업계는 "그게 커리어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이 충돌을 모른 채 살면, 세상의 기대를 내 욕구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팀장이 되고 싶다"가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조직이 기대하는 것을 내면화한 건지.
구분이 안 돼요. 8년 동안 회사에서 인정받으려 했던 것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사실은 세상의 기대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을까.
그 질문이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었습니다.
3C를 나란히 놓는 순간, 구분이 됩니다.
세 개의 원을 그려봤습니다. 벤다이어그램처럼.
Company(나의 역량): 구조화, 분석, 깊이 파기
Customer(내가 원하는 삶): 깊이 있는 작업, 눈에 보이는 결과물, 나누는 것.
Competitor(세상의 기대): 팀 관리, 안정적 커리어, 넓은 영역 커버.
교집합이 있었어요.
"구조화 능력으로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나누는 것."
이 지점에서 세 원이 겹쳤습니다.
나도 잘할 수 있고, 나도 원하고, 세상도 가치를 인정하는 영역.
그런데 갭도 선명했어요.
가장 큰 갭은 Company와 Competitor 사이.
나의 핵심 역량은 "깊이"인데, 세상은 "넓이"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갭을 무시하고 세상의 기대에만 맞추면, 내 강점을 죽이면서 약점으로 경쟁하는 셈이에요.
기업 전략에서 이건 최악의 선택입니다.
자기가 잘하는 걸 버리고, 남들이 더 잘하는 영역에서 싸우는 것.
두 번째 갭은 Customer와 Competitor 사이.
내가 원하는 것(새로운 시도, 콘텐츠 생산)과 세상이 기대하는 것(안정, 검증된 경로)이 방향 자체가 달랐어요. 이 갭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집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의 원인이 능력 부족이 아니라 방향 충돌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불안의 원인이 바뀌면, 대처도 바뀝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불안한 거라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충돌해서 불안한 거라면, 노력의 양이 아니라 방향을 조정해야 해요.
더 열심히 달리는 게 아니라,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를 다시 봐야 합니다.
영국에서 10대를 보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있어요.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것.
그곳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그 생각이, 한국에 돌아온 뒤로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회사의 기대, 업계의 관행,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들 속에서,
내 시나리오가 아닌 누군가의 시나리오를 따라가고 있었어요.
3C를 그려보기 전까지는 그걸 몰랐습니다.
세 개의 원을 그려봅니다.
Company - 나의 역량 직함을 빼고, Part 1에서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적어보세요.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에너지가 올라가는 활동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능력은 무엇인가.
Customer - 내가 원하는 삶 바로 답이 안 나오면, 역방향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하루"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다음, 그 반대편을 적어보세요.
Competitor - 세상의 기대 조직, 사회, 가족, 업계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하나씩 적어봅니다.
그 기대 중, 내가 동의하는 것과 동의하지 않는 것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① 세 원이 겹치는 곳에 무엇이 있는가? 그게 당신의 "스위트 스팟"일 수 있습니다.
② 가장 큰 갭은 어디인가? 그 갭이 지금 느끼는 불편함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③ 세상의 기대 중, 내가 내면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세상의 기대였던 것이 있는가.
나를 아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세상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 전부 다른 질문입니다.
하나만 알면 2D예요. 나만 보면 "난 이런 사람이야"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세 개를 나란히 놓으면 3D가 됩니다.
겹치는 곳이 보이고, 벌어진 곳이 보이고,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가 보여요.
"깊이 파고 구조를 만드는 역할. 넓게 관리하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파서 방향을 제안하는 역할."
이 답이 조직의 기대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건 다음 문제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고 그 답을 한다는 거예요.
다음 챕터에서는 이 3C 지도 위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올립니다.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누가 조연이고 누가 은밀히 각본을 쓰고 있는지.
이 시리즈는 매주 두 챕터씩 연재됩니다.
구독해두시면 다음 이야기가 도착할 때 알림을 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