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um Viable Product (MVP)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몇 달, 혹은 몇 년째 맴돌고 있어요.
글을 써볼까. 운동을 시작할까. 그 자격증을 따볼까.
시작은 안 했는데, 생각만 끝없이 굴려요.
가끔은 너무 오래 굴려서 이미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듭니다.
저는 글을 쓸까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그날 이후로 노트에 주제를 적었다 지웠다,
블로그 플랫폼을 알아봤다 닫았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핑계를 댔다 다시 잊었다를 반복했어요.
그런데 3년 뒤에도 첫 글은 없었습니다. 노트만 두꺼워졌어요.
문제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게임사업 PM으로 일하면서도 매일 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습니다.
게임도 했고, SNS도 봤고, 와인 공부도 했으니까. 시간은 있었어요.
부족했던 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확신이 없어서 시작을 못 한 게 아니라, 시작을 안 해서 확신이 안 생긴 것이었어요.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였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는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실행 제품)라는 개념이 있어요.
에릭 리스가 2011년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에서 정리한 건데,
지금은 거의 모든 IT 회사가 쓰는 표준 사고 방식이 됐습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거예요.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이 배우는 가장 작은 버전."
기업이 새 제품을 만들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어요.
1년 동안 완벽한 버전을 만들어서 출시하는 것.
그리고 출시하고 나서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원했던 건 그게 아니었다는 걸.
1년이 날아가요. 게임 업계에서도 똑같아요.
3년 개발한 대작이 출시 첫 주에 외면받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습니다.
만든 사람의 확신과 시장의 반응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예요.
MVP는 그 반대입니다.
2주짜리 거친 버전을 먼저 내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거기서 배운 걸로 다음 버전을 만들어요.
작게, 빠르게, 배우면서. 핵심은 "완성"이 아니라 "학습"이에요.
이걸 개인에게 옮기면,
확신이 생긴 다음에 시작한다"가 아니라 작은 실험을 먼저 한다가 됩니다.
확신은 실험의 입력이 아니라, 결과예요.
개인 MVP는 세 가지로 나뉘어요.
가설, 기간, 측정.
첫째, 가설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한번 해볼까"는 실험이 아니라 그냥 해보는 거예요.
가설은 "나는 ____일 것 같다"라는 문장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글쓰기에서 에너지를 얻을 것 같다",
"나는 아침형 인간일 것 같다"처럼.
검증의 대상이 명확해야 학습이 명확해져요.
가설이 없으면, 끝나고 나서도 "재밌었다/별로였다" 정도의 감상밖에 안 남습니다.
둘째, 기간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길어야 4주, 보통 2주. 기간이 없으면 결론이 안 나요.
"언젠가 결과가 나오겠지"라고 미루다가, 6장에서 봤던 약점 끝까지 못 가는 패턴 이 또 등장합니다.
저처럼 실증이 빠른 사람일수록 이게 더 중요해요.
"2주만 하면 끝난다"는 약속이 있어야,
중간에 새로운 자극이 와도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어야 끝까지 갑니다.
셋째, 측정 지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회사 KPI랑 다른 점이 있어요.
측정하는 게 매출이나 클릭수가 아니에요.
"이걸 하는 동안 나는 어떤 상태인가"예요.
에너지가 차오르는가, 시간을 잊는가, 끝나고 더 하고 싶은가.
자기 자신이 측정 도구입니다.
외부 반응이 아니라 내부 반응을 보는 거예요.
외부 반응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내 상태는 정직하게 관찰할 수 있어요
.
3년을 굴리던 그 생각을, MVP로 바꿔봤어요.
가설: "나는 글쓰기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소 실행: 브런치에 첫 글 한 편 올리기.
기간: 2주. 1주일은 주제 잡기, 1주일은 쓰고 발행.
측정: 쓰는 동안의 몰입도, 발행 후 기분, 반응에 대한 내 감정.
2주 뒤, 첫 글을 발행했어요.
결과부터 말하면 반응은 미미했습니다.
좋아요 몇 개.
초라한 숫자였어요.
솔직히 발행 버튼을 누를 때 손이 떨렸는데, 그 떨림이 무색할 만큼 세상은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결과는 숫자가 아니었어요.
쓰는 동안 두 시간이 30분처럼 지나갔어요.
발행하고 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다음 글 주제가 자꾸 떠올랐어요.
평소 같으면 잠을 방해하는 생각이 짜증났을 텐데, 이건 짜증이 아니라 설렘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발견 :반응이 적은 게 생각보다 덜 아팠어요.
"이 정도면 됐다"가 아니라, "반응이랑 상관없이 또 쓰고 싶다"가 진심이었습니다.
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쓰는 과정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어요.
9장에서 찍은 좌표 "혼자서 경험을 깊이 분석하는 사람" 가 실험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3년을 고민해도 안 보이던 답이, 2주의 실험으로 보였어요.
만약 이 실험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왔어도 - 쓰는 동안 지루했고, 발행 후 후련함보다 후회가 컸다면,
그것 역시 답이었을 거예요.
"글쓰기는 내 길이 아니다"라는 답.
환상을 2주에 정리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결과입니다.
MVP의 진짜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 "결론"이에요.
지금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 하나를 골라보세요. 그리고 이 다섯 줄을 써봅니다.
가설: "나는 ____일 것 같다."
최소 실행: 가장 작은 행동 하나.
기간: 2주 (혹은 4주).
측정: 이 활동 중 나의 상태 (에너지, 몰입, 기대감).
학습: 끝나고 알게 된 것 한 줄.
확신이 생긴 다음에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시작해봐야 확신이 생겨요.
머릿속에서 굴리던 3년이, 손으로 해본 2주를 못 이깁니다.
생각은 가설을 만들 뿐, 답을 만들지 못해요. 답은 행동에서만 나옵니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몇 년째 굴러가고 있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내 말이 그 말이야라고 느꼈다면,
그 생각을 2주 안에 가장 작은 버전으로 한 번만 시도해보세요.
결과가 어떻든, 3년의 안갯속에서 한 발짝은 분명히 나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