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핵심 지표 만들기

나만의 계기판

by 조이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 피터 드러커


경영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 중 하나예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매출, 이익률, 유저 수를 매일 측정하면서,

정작 내 삶에 대해서는 뭘 측정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없었습니다. 계기판 없이 운전하고 있었어요.

기름이 떨어져 가는지, 엔진이 과열되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자동차에는 계기판이 있다

자동차 계기판은 정말 단순해요.

속도, 연료, 엔진 온도, RPM. 네 가지 정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운전자는 그걸 보면서 지금 차의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멈추고, 주유소를 찾아요.

흥미로운 건, 이 네 가지가 100년 동안 거의 안 변했다는 거예요.

자동차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운전자가 봐야 할 핵심은 늘 같았습니다.


본질은 단순해요.

그런데 우리 삶에는 계기판이 없습니다.

그래서 연료가 바닥나도 모르고, 엔진이 과열되도 모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한참 뒤에야 알아차려요.

내 삶에도 한 장짜리 계기판이 있다면 어떨까요?


거창한 KPI 체계 말고, 자동차 계기판처럼 단순한 것.

기업의 균형 성과표(Balanced Scorecard)라는 도구가 있어요.

1992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로버트 카플란과 데이비드 노턴이 만든 건데,

재무 지표만 보지 말고 네 가지 관점(재무,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을

균형 있게 보자는 발상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글로벌 기업들이 이 프레임을 변형해서 씁니다.

이걸 개인에게 가져오되, 훨씬 가볍게 만들어봤어요.

4가지 관점이라는 구조만 빌리고, 내용은 삶에 맞게 다시 채웠습니다.




개인 계기판의 네 가지 관점

저는 네 가지 관점으로 잡았습니다.

성장, 관계, 에너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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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성장: 나는 배우고 있는가?

② 관계: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건강한가?

③ 에너지: 몸과 마음은 괜찮은가?

④ 방향: 내가 가려는 곳으로 가고 있는가?


네 가지면 충분합니다. 더 많이 잡으면 결국 안 봐요.

자동차 계기판도 항목이 다섯 개 넘으면 운전 중에 못 봅니다.

게임사업 PM으로 일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대시보드에 숫자가 30개 있으면, 아무도 30개를 다 안 봐요.

결국 한두 개만 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핵심 4개로 좁히는 게 실제로 보는 사람을 만들어요.




첫 계기판이 알려준 것

육아휴직 1주차에 처음으로 내 계기판을 그려봤어요. 결과는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성장: 높음. 글도 쓰고, 와인도 배우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브런치 작성을 위한 프레임워크 작업도 활발했고요.

매일 뭔가 새로 배우는 느낌.

점수로 매기면 8/10 정도였습니다.


에너지: 중간. 운동은 안 했지만, 잠은 잘 잤어요. 5/10.


방향: 양호. Star 활동인 글쓰기에 시간을 잘 쓰고 있었어요. 7/10.


관계: 바닥. 2/10.


일주일 동안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사람이 아내 외에 한 명도 없었습니다.

5장에서 ①번 사분면(핵심 조력자)에 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안 한 지 한 달이 넘었어요.

영국에서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과의 단톡방도, 마지막 메시지가 제가 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낸 거였습니다. 그것도 2주 전 거였어요.


숫자가 알려준 게 있어요.

나는 "혼자 성장하는 것"에 편향된 사람이었습니다.

9장에서 좌표로도 확인했지만, 계기판은 그걸 더 차갑게 보여줬어요.

좌표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면, 계기판은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였습니다.

진단과 측정의 차이예요. 진단은 성향이고, 측정은 행동이거든요.


성향은 바꿀 수 없지만, 행동은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어요.

거창한 게 아니라, 전화나 한번 하자라는 한 줄. 계기판이 없었으면 그 메시지도 없었을 거예요.


KPI의 함정

계기판을 만들 때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측정할 수 있는 것만 측정하면,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잃습니다.

회사에서 너무 많이 봤어요.

KPI가 매출이면, 모든 결정이 매출로만 수렴해요.

고객 만족도, 직원 사기, 장기 성장 가능성 등 후순위가 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운동 횟수"는 셀 수 있지만, "내 마음이 평온한가"는 숫자로 잡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평온함을 빼면 본질을 놓쳐요.

운동을 주 5회 하면서도 마음이 무너져 있는 사람이 있고,

운동을 한 번도 안 했는데 충만한 사람이 있어요.

숫자만으로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기판에는 정성적 질문도 한 줄 넣어야 해요.

"이번 주 가장 충만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지금 나는 평온한가?" 같은 것.

숫자와 질문이 함께 있어야 균형이 잡힙니다.


계기판은 정답이 아니에요. 거울입니다.

무엇을 측정하기로 했는지가, 이미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성장만 측정하는 사람은 성장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고, 관계도 측정하는 사람은 관계도 챙기는 사람이에요. 지표가 곧 가치관입니다.

지표를 바꾸면 행동이 따라오고, 행동이 바뀌면 결국 사람이 바뀌어요.

7장에서 "기준을 세우는 과정 자체가 자기 이해"라고 했던 그 원리가,

계기판에서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12개의 챕터가 끝났습니다.

5W1H로 시작해서 계기판까지 왔어요.

다음은 에필로그입니다.

12개 챕터에서 발견한 조각들을 한 줄로 엮는 시간.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에 답할 차례예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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