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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욱 Mar 22. 2023

Bar, 소전 서림, 책

경계가 필요할 때

  “이제 위스키가 맛있기는 해, 하지만 내 돈 주고 위스키를 병째로 사서 마시지는 않을 것 같아.”

  “난 바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위스키는 그냥 병으로 사서 집에서 혼술로 즐겨.”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내 입에서 나왔던 말들이다. 그리고 저 사람은 2022년 말에 단지 위스키를 목적으로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인생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거창하게 인생까지 안 가더라도 당장 나 자신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모르는 거다.

 

  바텐더라는 만화를 보면 bar의 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은 가벼운 유리문으로 된 bar 들도 많지만, 전통적인 bar의 출입문은 크고 무겁다. 이 무거운 문은 밖에서 보기에는 손님이 들어오기 힘들게 거부하는 듯 비친다. 하지만 일단 그 무거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 무거운 문이 있기에 손님은 안심하고 바깥세상으로부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온 기억이 있기에 그는 바깥세상과 유리될 수 있고, 새로운 공간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bar의 문은 크고 무겁다.

 



  최근에 새롭게 애정하는 공간이 생겼다. 영동대교 남단에 있는 소전 서림이다. 2021년 2월에 문을 연 소전 서림은 정육면체를 여러 개를 붙인 듯한 디자인이 특이한데 스위스 건축가 다 비데 마쿨로가 2016년 설계했다고 한다. 내부 공간이 정형화된 디자인이나 서점과 달리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고, 의자 역시 핀 율, 칼한센앤선, 아르텍, 카시나, 프리츠 한센 등 유명 브랜드에서 설계한 의자를 두어 앉는 사람에게 편안한 시간을 선사해준다.


  많은 특징이 있지만,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유료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연회비를 낸 회원이나 일일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고, 동시간대 입장 인원 또한 제한이 있다. 일본에는 몇몇 서점들이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한국은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QR 코드를 입구에서 검사해야만 하는데, 이 가림막을 넘어가면 세상의 복잡함을 잠시 내려두고 흰 벽돌들에 둘러싸인 채 편안한 의자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둘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나갈 때 한 번 더 QR 체크를 해야 하는 과정이 번거롭기보다는 세상과 유리되어 있던 내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무거운 입구 같기도 하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를 찾는다면, 그 짐을 버리겠다는 의미보다는 잠시라도 짐을 풀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공간은 쉽게 들어가는 공간이면 안 된다. bar와 소전 서림은 서로 다른 문이지만 외부와의 차이를 두는 공간이 있어 무거운 짐을, 버거운 일상을 벗어두고 다른 세상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독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읽는 책의 주제나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책의 표지를 열고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을 펼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물리적인 무거움이나 장벽을 지닌 입구는 아니지만, 작가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기에 가벼운 표지의 무게가 아닌, 존재가 바뀌는 무거움이 존재한다. 그 입장의 무거움이 끝나면, 우린 다른 존재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에 내가 지니고 있던 것들을 잠시 벗어둘 수 있다.

 

  살면서 맞이하는 ‘처음'의 순간들은 마치 bar의 문, 소전 서림의 입구, 책의 표지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이란 순간은 맞이하기엔 어떤 어려움이 있겠지만, 맞이하고 나서의 나는 다른 세계를 들어간다. 거기서 그때까지의 어려움을 잊거나, 이겨낼 힘을 얻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처음'의 문을 여는 순간, 이전과 나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달라짐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bar의 문을 열고 나오는, 소전 서림에서 나가는 QR 코드를 찍고 나오는, 책의 표지를 덮는 순간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살아야 하게 되더라도, 그는 그 그림자가 실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한번 변화해보았던 사람은 분명 그 이전과 다른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기에 잠시 바뀐 다른 세상에 머무르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의 현실은 따로 있고 우리가 변화해야 할 곳은 잠시 몸을 피해 들어간 bar, 소전서림, 책 속 세상, 그리고 ‘처음'을 맞이하는 순간 느끼는 감정의 세상이 아닌 그전에 내가 있었던 그곳이다.

 

  만화 바텐더로 시작을 열었으니, 다시 바텐더의 한 부분을 가져와 본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바의 문을 밀어 아주 잠깐의 휴식 뒤 다시 걸음을 옮긴다

바에서 마시는 술은 취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 한 잔은 산에 오를 용기와 기력을 준다.

그래서 바의 의자는 작은 것이 좋다.

  - 만화 『바텐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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