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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욱 Mar 25. 2023

젊은 남자 - 아니 에르노

삶으로서의 글쓰기

  데칼코마니는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데칼코마니로 만들어진 작품은 좌우가 같아 보이지만, 정확히는 대칭 상태이다. 좌측의 좌측면은 우측의 우측면이다.


  아니 에르노는 서른 살 연하와의 연애에 대한 개인사를 다룬 "젊은 남자"에서 남자 A를 자신의 죽음의 증거라고 표현했다. 아니 에르노가 살았지만 그는 없었던 시간, 그리고 에르노는 죽었지만 그는 살아 있을 시간을 생각하자 데칼코마니가 생각났다. 에르노만 살아있는 시간과 A만 살아있는 시간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그는 에르노의 죽음의 증거이자 기억의 전달자이고 뒤섞인 과거이다. 에르노는 A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의 모든 나이를, 삶을 두루 돌아다닌다.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A는 에르노에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 서른살 차이의 그를 만나며 에르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극이나 소설을 쓰는 기분을 받는다. 

  그와의 시간을 보내며 에르노는 현재는 과거의 복제라는 생각을 갖는다. A가 사는 루앙은 지금의 아니 에르노를 만들어낸 중요한 시원 중 하나인 "불법 임신 중절 수술" 이후 출혈을 일으키고 머물렀던 곳이다. A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푸에르타델솔 광장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 흘러나온 '나를 떠나지마(Don't make me over)' 는 그녀가 임신중절 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고 있을 때 흘러나온 음악이다.


  지금의 시간은 과거 어느 시원의 ‘두 번째‘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꼬리를 물고 미래로 연결되며 기억의 틀을 만든다. 에르노는 이 반복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임신중절이라는 그녀의 시원을 글로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글이 완성되었을 때 에르노는 A와 헤어진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을 때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political)."이라는 1960년대 래디컬 페미니즘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너무나도 개인적이지만 그 이야기의 시선은 사회를 향해있다. 젊은 남자 A는 아니 에르노의 '사회적 몸'이다. 그와의 시간이라는 개인적 경험은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에 대한 "사회 규범", 자신의 시원인 "임신 중절 수술"을 통해 사회적 현실로 하강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사회적 현실과 통할 수 있는 나의 가장 개인적인 경험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글쓰기에 대한 성찰 없이 어떻게 삶을 성찰할 수 있을까요?"

- 아니 에르노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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