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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elike Nov 19. 2021

그때그때 가볍게 툭툭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아는 사람들과 우리 동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중 한 사람이 전철을 타면 세 번이나 환승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그러면 차를 타고 와서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하더니 약속한 날 아무래도 차를 타고 가는 게 낫겠다며 어딘지 동 호수를 알려 달랜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에 주차를 하고 근처 음식점에 같이 걸어가서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 이르러서 차를 타러 가며 그녀가 갑자기 “근데 여기 아파트 주차장이 차를 주차하기엔 좀 좁더라.”라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 어디에 주차했어? 지하 1층보다는 지하 2층 주차장이 차가 좀 적어.”라고 말했지만 미진한 마음이 들었다. 나로서는 그녀를 배려해 주차할 곳을 알려주었는데 나의 호의에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를 보내고 집에 올라와서 그 말을 곱씹게 된다. 내 마음이 좁아서일까? 서운한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더니 집에 와서까지 생각이 난다. ‘너의 집 주차장은 얼마나 넓길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생각하니 근처에 있는 다른 아파트 주차장도 우리 아파트 주차장과 거의 넓이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 좁은 것도 아니고,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평범한 주차장인데 굳이 좁다고 표현하니 내 집을 내 앞에서 흉본 것 같아 화가 난다. 뒤통수를 맞은듯하다. 이런 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쌓아놓은 게 많아져, 나중에는 별일 아닌데도 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주차공간이지만 그녀가 느끼기에 진짜로 좁을 수도 있고, 큰 차 옆에 주차해서 좁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의 주차장 넓이에 우월감을 느껴 한 말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솔직한 것이 마냥 좋은 것일까? 어린아이라면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른이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녀가 말을 가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말할까? 특별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다 표현하면 싸우자는 것 같고. 또 싸워서 이겨봐야 다음엔 더 불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말은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라고 하거나 “주차가 힘들었나 보네.” 


난 불편하지만 잘 사는데 ‘아파트 주차장 간격이 좁으면 얼마나 좁고, 넓으면 얼마나 넓다고 다른 아파트 주차장이 좁니 넓으니 하며 싫고 좋고를 따지나?’하는 생각이 드니 ‘다음엔 우리 아파트에 주차하지 말고 넓은 데 가서 주차하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생업 때문에 꼭 만나야 할 사람도 아니었다. 만나고 나서 불편한 말이 생각나고 그래서 흉을 보게 될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이만한 일로 만날 사람을 잘라내면 주위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항상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나도 실수하는 사람이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내 레이더망에 자꾸 걸리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는 내가 말을 듣는 그릇이 더 커지기 전에는 가끔만 만나야겠다. 듣기 힘든 말을 쌓아두기보다 가볍게 말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가벼운 말이 어렵다. 그때그때 가볍게 툭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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