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종강까지 3주 남았다. 근데 과제와 시험이 정말 너무 많다. 매일 밤마다 과제와 시험이 번식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징그럽게 많다. 하나가 끝나면 하나가 생기고 하나가 끝나면 또 생긴다. 이 굴레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건 넷플릭스다 ㅠㅠ 한국말을 평소에 많지 쓰지 않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한국말을 들으면서 안정감과 행복함을 느낀다. 최근 내가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나빌레라’다.
아직 몇 화 보지 못했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일단 제일 놀라운 건 송강 배우의 빛나는 외모와 박인환 배우의 연기력이다… 농담 아니고 진짜 최고다. 그리고 드라마의 스토리와 생각할 거리들이 마음에 든다. 박인환 분은 젊은 시절 본인의 꿈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오며 살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집배원 일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했고 은퇴했다. 아내 나문희 분은 나이가 한참 먹었어도 자식들 생각뿐이다. 반면 박인환 분은 늘그막에 본인이 어렸을 때 보았던 백조의 호수를 기억하며 발레리노의 꿈을 꾼다.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꿈과 열정은 오로지 자식과 손자들만을 향해야만 할까, 이러지 않은 분들은 사회의 관념에서 벗어난 주책맞은 노인네일 뿐일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아내와 자녀들은 그 나이에 갑자기 운동을 하는지 궁금함을 표시하고, 발레리노복을 사려고 간 곳에서는 당연히 손자나 손녀의 발레복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박인환 분 본인의 옷을 산다니 점원의 표정은 굳었다. 박인환 분 본인도 본인이 발레를 연습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이 나이에 새로운 꿈을 가진다는 사실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만큼 본인에게 주어지는 시선이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부인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곱게 늙지 못한다고 욕하고, 자식들이 기가 막혀할 것이라고 시선을 두려워한다. 뿐만 아니라 절박한 이유가 있어서 손님의 갑질을 참는 사람에게는 참지 못한다고 욕을 한다. 모두에게는 모두의 사정이 있지만 그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 혹은 사회적 잣대로만 판단하고 평가하고 상처를 준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 그리고 사회적 시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폭력 속에 갇혀있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사회적 시선이라는 폭력 속에서 그에 벗어나게 행동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는 이탈자로 인식이 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각각 그런 시선 속에서 살아온 인물들이고 이런 폭력에 익숙한 어느 정도 시선 속에서 무기력해진 사람들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본인의 모습을 찾아간다.
일단 나는 한국 사회에서만 주로 살아보았으니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응당 그 나이 별로 해야 할 과제들이 주어진다. 공부, 취업, 결혼, 자녀, 은퇴 후 가족과의 삶. 이 사이클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낙오자 , 실패자 혹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곤 했다. 당장 우리 부모님만 해도 이 때는 결혼해야 하지 않나고(일단 아들에게 여자 친구 있는지부터 물어보셔야…) 말씀을 많이 하시고, 언제쯤 승진을 하고 싶은지 참 많이 물어보셨다. 비단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구, 선후배, 주변 이웃들, 직장동료들 모두 다 마찬가지였다. 흔히 한국사회의 사회적 시선은 이렇게 나타난다.
1. 대학은 어디 갈래
2. 군대는 언제 갈래(남자 한정)
3. 취업은 언제 어떻게 할래
4. 결혼은 언제 할래
5. 애는 언제 낳을래
6. (애 낳으면) 혼자는 외로운데 둘째는 언제 낳니
7. (아들 혹은 딸만 있으면)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 든든하다 / 딸이 있어야 그래도 나중에 부모 잘 챙긴다
등등 참으로 다양하게 요구하는 시선들, 참견들이 많다. 사회 전반뿐만이 아니라 사회 속의 작은 집단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지금은 조금 덜하긴 하지만, 승진이 최고라는 인식이 강했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는 경찰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더 가치 있는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경찰이 완전히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몇몇 선배나 동기들로부터 왜 그럼 자퇴를 하지 않냐는 종용 아닌 종용을 받기도 했다. 사실 화를 내지 못했다. 화도 났는데, 오히려 저들이 정상 같고 완전한 경찰의 길을 가지 않으려는 내가 이탈자로 보여 위축이 되었다. 직장을 나와서도 보니 승진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은 조금 다르게 여겨졌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승진보다는 나의 생활에 나의 가치에 관심이 있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사실 승진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런 시선을 받는 게 조금은 두려웠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은 것이 남들의 평가를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뒤로는 시선보다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한다. 물론 여기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건 쉽다. 나도 모르게 이때는 이래야 되지 않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건 사실이니깐.
아직 다 보지 않았지만, 그 결말이 궁금하다. 어느 정도 예측은 되지만 그 예측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내가 예측하는 그 결말처럼 이런 시선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대로 살았으면 한다. 제목이 말하는 대로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나빌레라 같은 사람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