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은 없다.
순례길을 15일째 걷고 있다. 지금은 메세타라는 구간에 진입해 걷는 중이다. 메세타는 스페인어로 탁자라는 뜻으로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 이러지는 고도 700-800m의 평탄한 지형을 보통 일컫는다. 끝없는 밀밭,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고 순례자들이 걷는 길 위에는 나무 그늘을 찾아보기 힘들며, 17km를 걸은 뒤에야 마을이 나타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길이다.
더구나 현재 스페인의 한낮 기온은 37-39도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은 요구가 되는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들 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찾아본 많은 블로그에서는 순례길을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인생에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묘사를 했다. 그리고 특히나 메세타 지역은 체력적으로 많은 요구가 되다 보니 더욱 그런 경우도 많다고 했고 이러한 기대를 하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정 반대였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그냥 길게 이어진 길일뿐이었다. 오히려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한 내용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며 다 해결이 되지 않았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냥 여러 여행지처럼 여러 사람들을 잠깐 만날 수 있었던,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여러 성당들을 둘러보며 미사를 드리는 그런 길이었다.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인생의 진리가 있거나, 또 가고 싶다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그런 길을 아니었다. 오히려 나로서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별하다고 포장이 되어 있는 것들도 결국은 별 거 없다”
우리는 보통 특정 대상에 대해 특별하다는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 찬사를 보내곤 한다. 여행지, 사람, 전자제품 등 여러 제품들에 특별한 이미지를 씌우곤 한다. 감성의 애플, 청렴결백한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 낭만적인 파리 등 여러 대상들이 이런 이미지에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와 다른 실제 모습에 실망을 하곤 한다. 감성의 애플은 불편하고 삼성 휴대폰과의 차이점을 잘 모르겠고, 낭만의 파리는 구걸하는 사람들과 개똥이 가득하고, 청렴해 보이는 정치인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구나처럼 사리사욕을 추구한 것으로 밝혀진다.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정말로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다. 특별해 보이는 우리네 인생도 사실은 70억 인생 중 하나일 뿐이니 말이다.
아직 절반 정도의 길을 더 가야 한다. 지금까지 300km가 넘는 길을 걸었고, 아직 400km 넘는 길을 더 걸어야 한다. 걷는 도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내가 더 느끼는 무언가가 생길 수도 있다. 앞으로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더 느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에 가졌던 많은 환상이 되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