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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ug 13. 2021

순례길을 걷는 중입니다 2

특별할 것은 없다.

순례길을 15일째 걷고 있다. 지금은 메세타라는 구간에 진입해 걷는 중이다. 메세타는 스페인어로 탁자라는 뜻으로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 이러지는 고도 700-800m의 평탄한 지형을 보통 일컫는다. 끝없는 밀밭,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고 순례자들이 걷는 길 위에는 나무 그늘을 찾아보기 힘들며, 17km를 걸은 뒤에야 마을이 나타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길이다.

더구나 현재 스페인의 한낮 기온은 37-39도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은 요구가 되는 길이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들 했다. 순례길을 떠나기  찾아본 많은 블로그에서는 순례길을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있고, 인생에서의 해답을 찾을  있으며,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내면을 들여다볼  있다고 묘사를 했다. 그리고 특히나 메세타 지역은 체력적으로 많은 요구가 되다 보니 더욱 그런 경우도 다고 했고 이러한 기대를 하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정 반대였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그냥 길게 이어진 길일뿐이었다. 오히려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한 내용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며 다 해결이 되지 않았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냥 여러 여행지처럼 여러 사람들을 잠깐 만날 수 있었던,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여러 성당들을 둘러보며 미사를 드리는 그런 길이었다.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인생의 진리가 있거나, 또 가고 싶다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그런 길을 아니었다. 오히려 나로서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별하다고 포장이 되어 있는 것들도 결국은 별 거 없다”


우리는 보통 특정 대상에 대해 특별하다는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 찬사를 보내곤 한다. 여행지, 사람, 전자제품 등 여러 제품들에 특별한 이미지를 씌우곤 한다. 감성의 애플, 청렴결백한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 낭만적인 파리 등 여러 대상들이 이런 이미지에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와 다른 실제 모습에 실망을 하곤 한다. 감성의 애플은 불편하고 삼성 휴대폰과의 차이점을 잘 모르겠고, 낭만의 파리는 구걸하는 사람들과 개똥이 가득하고, 청렴해 보이는 정치인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구나처럼 사리사욕을 추구한 것으로 밝혀진다.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정말로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다. 특별해 보이는 우리네 인생도 사실은 70억 인생 중 하나일 뿐이니 말이다.


아직 절반 정도의 길을 더 가야 한다. 지금까지 300km가 넘는 길을 걸었고, 아직 400km 넘는 길을 더 걸어야 한다. 걷는 도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내가 더 느끼는 무언가가 생길 수도 있다. 앞으로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더 느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에 가졌던 많은 환상이 되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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